4.
밤이 되자 어버버가 퇴근하여 들어왔다. 그녀를 앞에 앉혀 놓은 아다다는 저녁도 먹기 전에 오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 놓기 시작했다.’ 하도 말을 더듬거리니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더듬거리지 않았다면 ‘말을 했다’고 만 했을 것이다.
어버버도 요즘 이 문제로 머리에 쥐가 다 났었는데 아다다의 말을 듣고 보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좋은 소식이라는 생각이다. 이사비용이 얼마나 나오는지는 그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사 비용이라니 이사하는데, 필요한 차비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전세금으로 이십만 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긴 그 돈은 전세보증금이니 이사 나올 때 다시 받을 수 있는 돈이다. 다행히 은행 통장에 꼭 그만한 돈이 있었다. 그녀도 반장이라는 사람을 안다.
잘 아는 정도가 아니다. 자기를 회사에 취직시켜 주었고 주민등록증도 만들어 준 사람이다. 나는 수긍하기 어렵지만, 그 반장이란 사람이 사기꾼이란 소문도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들을 한 번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누가 의심한단 말인가. 전세금만 해도 그렇다. 이십만 원은 오 년 전의 전세금에도 못 미친다. 지금 이십만 원짜리 전세가 어디 있느냐, 여기까지 생각한 어버버는 반장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음 날 출근하면서 그녀는 반장을 따라 이사하자고 아다다에게 단단히 일렀다. 아침 일찍 올라온 반장은 아다다의 말을 알아듣고는 이내 트럭 한 대를 저 아래에 세워두고 다시 올라왔다.
그러고는 아다다의 세간을 몽땅 싣고 그의 집으로 떠났다. 세간이라야 이불 두 채에 큰 가방 하나 그리고 부엌살림 도구 한 통이 전부다.
혼자 남은 아다다는 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 밤 모녀는 두 손을 맞잡고 판잣집에 큰절을 올렸다. 삼십 수년을 잘 살게 해 준 그 은혜를 어찌 잊겠는가.
밤이 이슥하여 모녀는 훌쩍거리며 판잣집을 나섰다. 서운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읍내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이사 온 방은 금방 새로 지은 블로크 집이었다. 반장 집 마당에 방 하나 부엌 하나로 칸칸이 연결한 일자집이다. 총 열 칸의 날림 집이었다.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지은 집이니 별 볼품은 없었다. 그래도 새집이라 깨끗하다. 비록 신문지이지만 도배도 되어있었다.
산에서는 전기도 수도도 없었는데 여기는 수도꼭지도 있고 전깃불도 들어왔다. 이사 온 날 저녁에 반장은 어버버의 방에 성냥과 하이타이 한 통을 놓고 갔다.
어버버 모녀에게는 이제 별천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다다도 마음을 새롭게 하였다. 절대로 남의 집 장독 청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버버도 전기세, 수도세가 들어가 저축할 여유가 좀 적어지긴 하지만 너무 편하고 신기해서 한동안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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