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에 나는 신문사에 취직하였고, 소영이가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먼저 결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때까지도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는 못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사랑의 힘은 위대할 것이고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취직한 그해 5월의 기울어 가는 봄날, J시 어느 아파트 목욕탕에서 그 도시의 약사회 회장 집 딸이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하였다는 기사가 지방 방송을 타고 서울로 치고 올라왔다. 약사회장의 이름은 소영이의 아버지였다.
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하였다. 내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소영이는 나에게 마지막 편지 한 장도 보내지 못하고 그렇게 나를 떠나 버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내려 꺼졌다. 세상이 미웠다. 도대체 신은 있는가! 왜 죄 없는 한 여인이 죽어야 하는가!
누구 때문인가, 나 때문이라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녀의 빈소에도 갈 수 없었다. 다 피어 보지도 못한 꽃 한 송이를 어리석은 내가 꺾어 버렸다. 나는 죄의식에 싸여 하늘을 우러러볼 수도 없었다.
11
날이 어느새 저물어 가고 있다.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 P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다. 그 옛날 <동주>의 같은 회원이었다. 그는 실내 골프 연습장에 있었다. 요즘 골프에 푹 빠진 모양이다. 저녁에 강변의 장어집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꽤 오래간만의 만남이어서 그동안의 나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친구야. 고생이 많구나. 그러나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봐. 너의 집으로 들어온다는 게 영 낯설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재소자도 재활 프로그램이 잘되어 있어. 출소 후 생활할 수 있는 기술들을 하나씩 배운다는 거야. 아마도 어머니도 살아가시는 데는 불편이 없으실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려. 그러면 언젠가는 나타나시지 않겠어."
"하긴 그래, 나도 그렇게도 생각해……, 하지만, 내가 그동안 엄마를 너무 몰랐단 말이야. 그것이 속상해 죽겠어. 그것이 억울해. 그리고 왜 나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냐는 거야. 나로서는 그런 엄마를 알 수가 없단 말이야."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41) (1) | 2023.04.22 |
---|---|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40) (2) | 2023.04.21 |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38) (2) | 2023.04.19 |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37) (5) | 2023.04.18 |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36) (1) | 2023.04.1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