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03
사또는 그때까지 김삿갓의 뒷모습을 유심(幽深)히 바라보고 있다가 별안간 일어서며 좌우(左右)에 묻는다.
<지금 대문(大門) 밖으로 사라진 사람이 혹시 김삿갓이 아니었더냐?>
그러나 좌우(左右)의 사람들은 김삿갓이 누구인지를 알 턱이 없었다.
<김삿갓이 어떤 사람이옵니까?>
사또는 그 이상 물어볼 필요(必要)가 없는 듯, 부랴부랴 신발을 끌며 부리나케 대문(大門) 밖으로 나왔다. 자기 자신이 직접(直接) 확인(確認)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또가 대문(大門)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김삿갓은 이미 꽤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여보시오, 나 좀 보시오,>
사또는 소리를 질러 불렀다. 그러나 김삿갓은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냥 휘적휘적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저분은 분명(分明) 삿갓 선생(先生)이시다-
사또는 그런 생각이 들어 체면불고(體面不顧)하고 헐레벌떡 김삿갓을 쫓아가기 시작하였다.
<여보세요, 선생(先生)! 나 좀 보세요!>
사또는 연방 소리를 질러가며 김(金)삿갓의 뒤를 부산스럽게 쫓아갔다.
그러나 김삿갓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그냥 걸어 나간다. 얼른 보기에는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건만, 정작 따라잡으려고 하니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소리소리 질러가며 가까스로 따라, 잡으니, 김삿갓은 그제 사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아니, 사또 어른께서 웬일이 시옵니까? 옥관자(玉貫子) 사건(事件)은 문초(問招)가 끝난 줄로 알고 있는데 물어보실 말씀이 아직도 남아 있사옵니까?>
회양(淮陽) 군수(郡守) 이범호(李凡鎬)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김삿갓의 손을 덥석 움켜잡으며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묻는다.
<선생은 김삿갓 선생(先生)이 아니시옵니까?>
김삿갓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삿갓 선생(先生)이라뇨? 보시다시피 나는 삿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사또 어른한테 선생(先生)이라고 불릴 사람은 못 되옵니다, 사또 어른께서는 혹시 사람을 잘못 보시고 부르신 것은 아니 옵니까?>
그러나 내숭을 떤다고 속아 넘어갈 이범호(李凡鎬)는 아니었다.
<선생께서 아무리 정체(正體)를 숨기려고 하셔도 저만은 못 속이시옵니다, 선생이 영월(寧越) 고을 백일장(白日場)에서 장원(壯元) 급제(及第)를 하셨을 때, 저는 차석(次席)으로 급제했던 이범호(李凡鎬)라는 사람입니다,>
이범호가 그렇게 나오니 김삿갓은 더 이상 가면(假面)을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 그래요? 이거 참 반갑소이다>
<저는 그 후 서울로 올라가 과거(科擧)에 급제해서 얼마 전에 회양(淮陽) 군수로 제수(除授)되어 내려왔습니다. 선생께서는 그 후에 세상을 버리고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셨다는 소문(所聞)을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하하, 인생하처불상봉(人生何處不相逢)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영월(寧越)에서 백일장(白日場)을 같이 본 분이 회양(淮陽) 군수(郡守)가 되셨다니 진심(眞心)으로 기쁘오이다,>
<저의 고을에서 선생(先生)을 만나 뵌 이상, 저로서는 선생과 그냥 작별(作別)할 수가 없소이다, 노독(路毒)을 푸실 겸, 단 며칠 동안만이라도 저의 고을에서 쉬어 가시옵소서,>
사또는 그렇게 말하며 김삿갓의 손을 억지로 잡아끄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손을 내저었다.
<사또 어른의 후의(厚意)는 고맙기, 한량없소이다, 그러나 나는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야 할 길이 바쁜 사람이니 그냥 내버려두소서,>
<선생께서는 무슨 말씀을! 제가 워낙 풋내기 사또인 관계로 민정(民情)에서 매우 어두운 편이니, 며칠 동안 묵어가시면서 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꼭 들려주시옵소서,>
그러고는 사또는 김삿갓을 억지(抑止)로 잡아끄는 것이었다. 회양(淮陽) 고을에서 금강산(金剛山)까지는 2백여 리밖에 안 된다. 김삿갓은 회양 고을 까지 와서 또다시 늑장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회양(淮陽) 군수는 옷소매를 부여잡고 늘어지며, 한사코 못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185쪽~187쪽-계속-(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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