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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의 <환상통>

시평

by 웅석봉1 2022. 11. 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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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의 시<환상통 幻想痛>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베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것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은 없고, 바퀴 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창밖,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상처에서, 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환상통> 전문.

 

김신용의 시집<<환상통>>의 주제 시 <환상통>이다. 시집에는 가난과 고통, 외로움이 곳곳에 흐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저주나 분노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고통을 노래하거나 승화시키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시는 강렬한 어떤 메시지보다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애잔한 감흥을 준다.

 

어느 따뜻한 봄날 시인이 소래포구 어디엔가 움막 같은 거처에 있을 때 일일 것이다. 아내와 수의를 짓는 일을 하다가 점심으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집 밖으로 나와 양지바른 묘지에 앉았다.

 

땅속까지 파고 들어간 정오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눈의 피로를 풀 겸 담배 한 대 물고 먼 산을 쳐다보는데 바로 앞 감나무 가지에서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시인의 담배 연기에 놀라 후르르 날아간다.

 

그런데 까치가 날아간 그 가지가 파르르 가늘게 떨리는 것이 시인의 눈에는 나무의 아픔이 되어 보였다. 이때 문득 옛날,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지게를 부순 일이 머리를 스친다.

 

지금도 아픈 그 순간을, 그런데 또, 지게를 잠시 놓고 빌딩 숲 어느 골목에서 담배 한 대 물고 있는데 저 길모퉁이에 노파 한 분이 폐지를 가득 담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노파는 너무 작아 보이지 않고 리어카 만 멀어져 가고 있다.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지게 진 그 등이 지금도 아프고 노파의 그 발자국이 지금도 안쓰럽다.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처럼. 마치 환상통처럼,

 

그러나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창밖,’에서 시는 전환을 맞는다. 시인은 무심으로 세상을 한 번 바라본다. 그랬더니 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로 현실이 변한다.

 

이때의 바람은 공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이다. 바로 그것이 환상통이다. 아픈 상처가 바람처럼 지나가니, 마지막 연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첫 연의 그것과는 정서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가벼움이다. 삶의 가벼움이 가다 온다.

 

사는 것이 뭔데? 이리도 저리도 어려운가. 이 넓은 우주에 조그만 새 한 마리가 어느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가는 것과 다를 게 뭐 있다고. 뭐 그리 대수라고,

 

가늘게 흔들리는 가지처럼 가볍게 사는 게 인생 아닌가! 하는 감정이 숨어 있는 시가 분명하다. 그러니 시인은 어려운 삶을 비관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삶을 가볍게 생각하자.

 

김신용은 지게꾼. 노숙자. 때로는 걸인이지만, 그런 어려운 삶 속에서 시가 어찌 나올 수 있으며, 설사 시를 쓴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시가 나와야지 어떻게 이런 부처님 같은 시가 나올 수 있는가?,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신용은 학벌이나 문단의 인맥도 없이 가난에 쫓겨 떠도는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 20223월에는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현재 진행형이라니 더욱 존경스럽다. 그의 인간 승리에 감사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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