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는 어떤 세포가 있을까?
뼈를 만드는 뼈모세포와 뼈를 부수는 뼈파괴세포가 있다. 뼈파괴세포는 오래된 뼈를 녹이고, 뼈모세포는 새로운 뼈를 만든다.
뼈는 매일 새로운 뼈가 만들어지고 교체(交替)되며 성장한다. 이를 골 대사(뼈 리모델링)라고 한다. 잠을 많이 자야 키가 큰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뼈모세포는 잠자는 동안 활발하게 활동(活動)하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졌을 때 깁스 등으로 고정하고 안정을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붙으며 치유된다. 이 과정(過程)에도 뼈모세포와 뼈파괴세포의 활동이 관여한다.
성장기 아동의 뼈 양쪽 끝에는 연골세포(軟骨細胞)가 집중되어 있다. 이 연골세포가 증가하면 뼈는 세로 방향으로 자란다. 그리고 뼈 표면(表面)에 있는 골막의 뼈모세포가 증가하면 뼈는 가로 방향으로 길어지고 굵어진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66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2월 11일(무신/3월 9일)
맑다. 아침에 체찰사께 갈 문서에 작성하여 보냈다. 보성의 계향유사(繼餉有司, 군량미를 보급하는 사람 또는 관청) 임찬(林瓚)이 소금 50섬을 실어 갔다. 임달영(任達英)이 제주에서 돌아오면서 제주 목사의 편지와 박종백(朴宗伯), 김응수(金應綏)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느지막이 장흥 부사와 우우후(右虞候)가 왔다. 낙안 군수와 흥양 현감도 불러 활을 쏘았다. 해가 질 무렵 영등포 만호(萬戶)가 소실(小室, 첩)을 데리고 술을 가져와서 권했다. 어린아이도 데려와서는 두고 돌아갔다. 땀을 흘렸다.
2월 12일(기유/3월 10일)
맑다. 창녕 사람이 일찍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화살대 50개를 경상 수사에게 보냈다. 느지막이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 부사와 흥양 현감도 같이 쏘았다. 날이 저물어 헤어졌다. 어린아이는 저녁 8시쯤에 돌아갔다.
2월 13일(경술/3월 11일)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공무를 보았다. 강진 현감이 기한을 어겨 그 죄를 벌했다. 가리포 첨사의 논보(論報)가 약속보다 늦어 타일러서 내보냈다.
영암 군수를 파면시킬 장계 초안을 잡았다. 저녁에 어란포 만호(萬戶)가 돌아갔다. 임달영(任達英)도 돌아갔다. 제주 목사에게 답장을 보낼 때 청어와 대구, 화살대와 곶감, 삼색 부채를 동봉하여 보냈다.
주) 논보(論報)는 하급 관아에서 자기의 의견을 붙여 상급 관아에 보고하던 일.
2월 14일(신해/3월 12일)
맑다. 느지막이 나가서 공무를 보고 장계 초안을 수정했다. 동복(同福)의 계향유사(繼餉有司) 김덕린(金德鱗)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 수사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왔다. 새로 지은 곳간 지붕에 이엉을 얹고, 낙안 군수와 녹도 만호 등을 불러 떡을 먹었다.
얼마 후에 강진 현감 나대용(羅大用, 1556~1612)이 와서 인사하기에 위로하고 술을 권했다. 저녁에 물을 부엌으로 끌어들여 물 긷는 일을 편하게 했다. 이날 밤 바다 위에 뜬 달이 낮처럼 밝았고 물결의 빛은 비단결 같았다.
홀로 누각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흥양(興陽)의 계향유사(繼餉有司) 송상문(宋象文)이 와서 쌀과 벼를 합해 7섬을 바쳤다.
2월 15일(임자/3월 13일)
새벽에 망궐례를 행하려 했으나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마당이 젖어 행하기가 어려워 중지했다. 저녁때에 전라우도와 경상도에서 항복한 왜인이 같이 서로 짜고 도망하려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령을 보내 그쪽에 알렸다.
아침에 화살대를 가렸다. 큰 살대가 111개와 그다음 살대가 154개를 옥지(玉只)에게 주었다. 또 아침에 장계 초안을 수정했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보는데, 웅천 현감, 거제 현령, 당포(唐浦) 만호, 옥포 만호, 우수사 우후(虞候)와 경상 우후도 함께 와서 보고 돌아갔다.
순천의 둔전에서 추수한 벼를 가지고 왔다. 동복 유사 김덕린(金德麟), 흥양 유사 송상문(宋 象文) 등이 돌아갔다. 저녁에 사슴 한 마리와 노루 두 마리를 사냥해 가지고 왔다.
이날 밤 달빛이 대낮과 같고 물결 빛은 비단결과 같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들 수가 없었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에 취해서 노래를 불렀다.
2월 16일(계축/3월 14일)
맑다. 아침에 장계 초안을 수정했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보았다. 장흥 부사, 우수사 우후, 가리포 첨사가 와서 같이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전날 겨루기에서 진 쪽이 대접하였는데, 많이 취해서 헤어졌다. 이날 밤에 나도 몹시 취하여 잠들 수가 없어 앉았다 누웠다 하는 동안에 날이 새었다. 봄날의 노곤함이 이렇구나!
2월 17일(갑인/3월 15일)
흐리다. 나라 제삿날(세종)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들 면(葂)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박춘양(朴春陽)과 오수(吳水)가 석수어(石首魚, 조기)를 잡는 곳으로 갔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몸이 편하지 않았다. 저녁에 흥양 현감이 와서 저녁을 같이 먹고 돌아갔다.
미조항 첨사(僉使)의 안부 편지가 왔는데 ‘방금 관찰사의 공문을 받고 진주성으로 부임하게 되어 인사드리지 못한다. 자기 대신으로 황언실(黃彦實)이 맡게 되었다’고 했다.
웅천 현감의 답장이 왔다. 임금의 유서(諭書)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에 하늬바람(서풍)이 몹시 불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떠난 아들을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봄기운이 사람을 괴롭히니 몹시도 나른하다.
2월 18일(을묘/3월 16일)
맑다. 아침밥을 먹고 공무를 보았다. 하늬바람(서풍)이 크게 불었다. 느지막이 체찰사의 밀서가 3통이나 왔다. 하나는 제주목에 계속해서 후원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등포 만호 조계종(趙繼宗)을 심문하는 일이요, 나머지 하나는 진도의 전선을 아직은 독촉하여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저녁에 김국(金國)이 서울에서 밀서 2통과 책력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조정의 관보도 가지고 왔다. 황득중(黃得中)이 철을 싣고 왔다. 절(節)이 술을 가지고 왔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주) 김국(金國)은 이순신에게 조정의 공문과 비밀 유서를 전하는 일을 했다.
2월 19일(병진/3월 17일)
맑으나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아들 면(葂)이 잘 도착했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저녁에 낙안(樂安)의 군량선이 바람 때문에 길이 막혀 사량(蛇梁)에 배를 댔는데 바다가 조용하면 출발할 것이라 한다.
이날 새벽에 경상도 진영에 있던 투항한 왜인을 난에몬(亂汝文) 등을 시켜서 묶어와 목을 베게 했다. 경상 수사가 왔다. 장흥 부사와 웅천 현감, 낙안 군수와 흥양(興陽) 현감, 우수사와 사천 현감 등과 함께 부안에서 보낸 술을 마셨다. 황득중(黃得中)이 가져온 총통 제조용 철을 저울로 달아서 보관하게 했다.
2월 20일(정사/3월 18일)
맑다. 아침 일찍 조계종(趙繼宗)이 현풍(玄風) 수군 손풍련(孫風連)으로부터 소송당한 일로 대면 진술을 위해 이곳에 왔다가 돌아갔다. 느지막이 공무를 보러 나가서 공문을 작성하여 나누어 보냈다.
손만세(孫萬世)가 사사로이 입대(入隊)에 관한 공문을 작성한 죄를 벌했다. 오후에 활 7순을 쏘았다. 낙안(樂安) 군수와 녹도(鹿島) 만호가 함께 왔다. 비가 내릴 조짐이 있더니 새벽에 몸이 피곤하다. -18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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