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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115

서평

by 웅석봉1 2025. 4. 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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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 서서히 진행되어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증상(症狀)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는 단계인 경우가 많다. 암은 진행(進行) 단계에 따라 1~4기로 나누는데, 1기와 4기는 3년 후 생존율(生存率)이 두 배가량 차이가 난다. 조기에 발견하려면 정기적인 암 검진(檢診)이 가장 중요하다.

 

국가에서도 암 검진을 권장한다. 고령자일수록 위험율(危險率)이 높아, 우리나라의 경우 자궁경부암(子宮頸部癌)20세 이상, 위암(胃癌)40세 이상, 유방암(乳房癌)40세 이상, 대장암(大腸癌)50세 이상, 간암(肝癌)40세 이상의 암 발생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국가 암검진(癌檢診)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암 검진은 위와 대장 등 부위(部位)에 따라 검사법이 다르다. 검진 기술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피 한 방울로 13가지 종류 암을 진단(診斷)하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후각이 예민한 개의 특성을 활용한 암 탐지견(探知犬)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9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416(갑자/64)

 

맑다. 아침밥을 먹고 사정(射亭)에 올랐다. 쌓여 있는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경상 수사 원균(元均)의 군관 고경운(高景雲)과 도훈도, 변고에 대비하는 색리(色吏)와 영리(營吏)를 잡아 지휘에 불응하고 적의 변고를 즉시 보고하지 않은 죄를 물어 곤장을 쳤다.

 

 

저녁에 송두남(宋斗男)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장계에 따라 하나하나 명령대로 시행하였다.

 

417(을축/65)

 

맑다. 저녁나절에 사정(射亭)에 올라 공무를 보았다. 우수사가 와서 만났다. 거제 현령 안위(安衛)가 급히 와서 왜선 100여 척이 본토(일본)에서 출발하여 절영도(부산 영도)로 향한다고 보고해 왔다. 저물녘에 거제에 살다가 포로로 잡혀갔던 남녀 16명이 도망쳐 돌아왔다.

 

1) 안위(安衛)는 찰방(察訪)을 지내고, 정유년에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천거로 거제 현령이 되었다. 벽파정(碧波亭, 진도군 고군면 벽파길 90) 아래에서 왜적을 섬멸하자, 이순신(李舜臣)이 보고하여 선조가 무경칠서(武經七書)를 하사(下賜)하고 전라 병사에 임명(任命)하였다.

 

2) 무경칠서(武經七書)는 중국의 일곱 가지 병서를 말한다. 즉 주나라의 손무(孫武)손자(孫子), 전국시대 위나라 오기(吳起)오자(吳子), 제나라 사마양저(司馬穰苴)사마법(司馬法), 주나라 위료(慰繚)위료자(慰繚子), 당나라 이정(李靖)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한나라 황석공(黃石公)삼략(三略), 주나라 여망(呂望)육도(六韜)를 일컫는 말로 송나라 원풍(元豊, 1078~1085) 때에 이들 병서를 무학(武學)으로 지정, 칠서(七書)라고 호칭한 데서 비롯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418(병인/66)

 

맑다. 새벽에 탈출하여 돌아온 사람들에게 적의 동향을 물으니.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平義智)는 웅천 땅 입암(笠巖,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제덕리)에 있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웅포(熊浦,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있다고 했다.

 

충청도 신임 수사 이순신(李純信), 수천 부사 권준(權俊), 우수사 우우후 이정충(李廷忠)이 왔다. 늦게 거제 현령 안위(安衛)도 왔다. 저녁에 비가 내리는데 밤이 다 가도록 계속 내렸다.

 

419(정묘/67)

 

비가 내렸다. 첨지 김경로(金敬老)가 원수부(元帥府)에서 왔다. 적을 토벌할 대책을 논의하면서 한 배에 잤다.

 

420(무진/68)

 

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 수사 이순신(李純信), 장흥 부사 황세득(黃世得), 마량 첨사 강응호(姜應虎)가 와서 바둑을 두면서 군무도 의논했다. 충청 수사 이순신(李純信)이 돌아가고 흥양 현감(縣監) 배흥립(裵興立)이 들어왔다.

 

421(기사/69)

 

비가 오락가락한다. 홀로 봉창 아래 앉아 있어도 저녁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이 충청 수사가 되었으니, 중기(重記, 인수인계서)를 만드는 일로 상의하고 돌아갔다.

 

저녁에 김성숙(金惺叔, 김경로의 아들)과 곤양(昆陽) 군수 이광악(李光岳)이 왔다. 저물녘에 흥양 현감(縣監) 배흥립(裵興立)도 왔다. 본영의 탐후선도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전하니 다행스럽다. -11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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