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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70

서평

by 웅석봉1 2025. 2. 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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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5일 자로 중단되었던 난중일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2024322일부터 45일까지 전국(제주 제외) 13세 이상 1,777명을 한국갤럽이 면접(面接)조사 (CAPI, Computer Assisted Personal Interviewing)한 결과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10위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1545~1598)14%로 부동의 1위였다.

 

2위가 세종대왕(1397~1450) 10%, 3위가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 7%, 4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1946~2009) 4.5%, 5위가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 4.4%, 6위가 김구 독립운동가(1876~1949) 4.4%, 7위가 부모 4.3%, 8위가 정주영 현대그룹 설립자(1915~2001) 4.1%, 9위가 안중근 독립운동가(1879~1910) 4.0%, 10위가 유관순 독립운동가(1902~1920) 3.4% 순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순신에 대한 인기가 지속되고, 이순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전국에 5,0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소인(小人)도 이러한 인기에 편승(便乘)하여 이순신의 저서(著書) 난중일기(亂中日記)와 노년들의 관심 사항인 <건강(健康) 정보(情報)>까지 어설프게 연재(連載)코자 한다.

 

면역력이 뭘까?

 

병원체(病原體)가 몸속에 들어왔을 때 공격하는 것이 면역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거나 자율신경(自律神經, 무의식적으로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에 이상(異常)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기능이 떨어지거나 하면, 면역력(免疫力)이 저하된다.

 

면역력이란 바이러스 등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病原菌)에 저항하는 힘을 말한다.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저항하는 힘이 약해져 질병(疾病)에 쉽게 노출(露出)된다. 면역력을 높이려면 푹 자고, 잘 먹으며,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생활 습관(習慣)을 길러야 한다.

 

면역기능이 과도(過度)하게 작용하는 것도 좋지 않다. 면역기능이 과도하면 건강한 세포(細胞)까지 공격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維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친 운동(運動)도 면역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52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기 전에 이순신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순신은 우리나라에서만 추앙받는 위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발굴과 연구를 토대로 이제는 세계 해전사에서도 위대한 전략가이자 훌륭한 지휘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단순한 무장(武將)만이 아니라 정치가이자 외교가이며 과학자이자 탁월한 문학가였다.

 

그가 남긴 시와 문장, 장계, 편지 등은 모두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은 임진왜란 7년 동안 기록한 일기(日記). 이순신이 죽은 뒤 200년이 지난 정조(正祖) 때 이순신의 시문과 저작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행적과 관련 문서들을 집대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충무공전서이며, 그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난중일기이다.

 

난중일기1,604일 동안 개인의 생사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싸우던 전쟁터에서의 일기다. 전투 상황과 부대 통솔, 전란 중의 사회 현실과 국정에 대한 의견, 비밀스러운 군사 계책, 가족이나 친지에 대한 감정(感情), 부하들의 상벌(賞罰) 기록 등 그 내용이 광범위해서 임진왜란의 전체적인 역사를 연구할 때 가장 정확한 사료가 된다.

 

또한 그 문장이 간결하고도 진실하여 충효신의(忠孝信義)의 절절한 마음을 가진 인간 이순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고전(古典)이란 한 민족의 정신적, 문화적 양식이다.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일상과 심정(心情)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난중일기는 오늘날 우리 민족을 바른길로 이끌어 주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고전이 될 것이다. -고정일의 난중일기 서문에서-

 

계사년(1593) 510(계해/ 68)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침에 출항해서 견내량(見乃梁)에 이르렀고, 느지막이 소정(小頂, 작은 산마루)이라는 곳에 올라 흥양(興陽, 고흥)의 군대를 검열하고, 약속 날짜를 어긴 여러 장수(將帥)들을 마음이 아프지만 대의(大義)를 위하여 크게 꾸짖었다.

 

우수사(右水使)와 가리포(加里浦) 첨사 구사직(僉使, 具思稷)도 모여 함께 의론하였다. 조금 뒤에 선전관 고세충(高世忠)<부산으로 후퇴하는 왜적을 물리치라>는 임금의 교지(敎旨)를 받들고 왔다.

 

부찰사(副察使)의 군관인 민종의(閔宗義)가 공문을 가지고 왔다. 저녁에 영남(嶺南) 우후(虞候, 절도사를 직접 보좌하는 정4품 직위) 이의득(李義得)과 이영남(李英男, 1563~1598, 충북 진천 출신으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함)이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봉사(奉事, 관상감이나 돈녕부 등에 둔 종8품 벼슬) 윤제현(尹齊賢)이 본영에 도착했다는 편지가 왔다. 바로 답장을 보내 본영(本營)에 머무르라고 말했다.

 

1) 견내량은 거제 사등면과 통영 용남면을 잇는 거제대교 아래쪽의 좁은 해협.

2) 가리포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서쪽 해역. -7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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