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판옥선은 적선보다 몸체가 큰 데다 그만큼 높이가 있기에, 일본 수군 입장에서는 판옥선에 기어오르기 쉽지 않았다. 명량의 거센 물살도 한몫했다. 물살이 강하다 보니 가까이 붙은 우리 판옥선과 적국의 전함이 흔들렸고, 따라서 판옥선에 내던진 사다리와 갈고리 모두 심하게 흔들렸다.
그로 인해 이순신의 판옥선으로 기어 올라가려는 일본군들은 중심을 잃으며 바다에 빠졌고 강한 물살에 쓸려 내려갔다. 이순신은 대장선에 가까이 달라붙은 적선을 떼어내기 위해 함포의 포신을 아래로 내려고 조준 사격을 명령했다. 적선에 포탄이 작렬하였고, 그 진동이 이순신의 판옥선에도 전달될 정도였다.
우리 판옥선의 조준 사격을 당한 적선은 한 척씩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조선의 사수들은 화살을 쏘았고, 판옥선으로 기어오르려는 적들을 긴 낫으로 내리찍었다.
또 가까이 붙은 적선에는 최신 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1592년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한 시한 포탄)를 던지고 불화살을 날려 적선들을 불태웠다. 격군들도 긴 창을 들고 갑판으로 뛰어올라 등선하려는 적군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해전사 중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후반에 뒤처진 12척의 판옥선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 급박한 와중에 판옥선 1척이 홀로 싸우는 대장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바로 거제 현령 안위의 판옥선이었다. 곧이어 또 한 척의 판옥선이 달려왔다. 중군장 김응함의 배였다.
이순신은 이들에 호통을 쳤지만, 늦게나마 합류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잘잘못은 차후에 따지기로 미루고 지금은 전투가 급하니 공을 세우라고 독려했다. 안위(安衛, 1563~1644)와 김응함(金應緘, 1554~?)의 판옥선이 함께하니 이제 3척의 판옥선이 133척의 적함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위의 판옥선이 적군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곧이어 적군들이 안위의 판옥선 위로 기어오르는 데 성공하여 육박전이 벌어졌다. 백병전에 밀린 조선의 수군들이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를 본 이순신과 김응함의 판옥선에서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 안위의 판옥선이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정오가 되자 물살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적군이 순류(順流)를 타고 공격했고, 조선 수군은 역류(逆流)에서 맞서 몇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량의 물살도 이순신의 편이었다. 물살이 바뀌면서 적 함선들의 잔해가 거친 물살을 타고 적군 진영으로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적 함선 100여 척은 자기편의 함선 잔해를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반면 이순신과 안위, 김응함의 판옥선은 순류 물살을 타고 빠르게 전진하면서 함포 사격을 가했다. 3척의 판옥선이 승기를 잡자, 후방에서 구경하던 9척의 판옥선들이 용기를 얻어 합류하면서 함포 사격을 가했다. 이제야 12대 133의 해볼 만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녹도 만호 송여종(宋汝悰, 1553~1609) 등이 지휘하는 9척의 판옥선들이 이순신의 기함을 앞질러 가면서 함포 사격을 가했다. 이대로 전투가 끝나게 되면 명령 불복종 죄로 처형될 위기에 처한 이들은 사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이순신의 기함에 탄 항왜(降倭, 일본군임에도 조선에 항복한 사람) 장수 준사(俊沙)가 바다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마다시(馬多時)! 마다시(馬多時)! 붉은 비단 군복을 입은 왜장이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바닷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준사가 외친 마다시!을 건지고 보니 바로 일본 수군의 선봉장 구루시마 미치후사(1561~1597)였다. 구루시마의 잘려진 목을 본 적군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갔다. -3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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