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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4

단편소설

by 웅석봉1 2024. 2. 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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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면서 같이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본다. 개중에는 이사를 간 사람도 있고 짐을 싸는 사람도 있다. 모두 다 입을 꾹 다물고만 있다. 무섭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다다는 알 수가 없다. 방에 들어온 아다다는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놈들한테 세간이고 뭐고 모두 빼앗긴다. 내가 챙겨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떨리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남들처럼 옷가지를 큰 가방에 주섬주섬 담았다.

 

이불도 이불보에 싸고 솥단지도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밖을 보니 괴물처럼 생긴 쇳덩어리들이 아가리를 쩍쩍 벌리고 버티고 서 있다.

 

오후만 되면 저놈들이 여길 달려들어 이 방을 깡그리 집어삼킬 것이다. 나까지도. 아다다는 안간힘을 다하여 이불보며 옷 가방을 마당으로 옮겨 놓았다. 오후가 되어 그 괴물이 반장 집을 덮쳤다.

 

우르르 쾅. 콰당!

 

삽시간에 육중하던 집은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 앉았다. 유리창도 문짝도 남아나지 않는다. 방 안에 있던 거울이 쨍그랑하고 쓰러진다.

 

믿었던 반장 집이 한순간에 폭삭 가라앉았고 그 자리엔 뿌연 먼지만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를 자기 방 앞에서 지켜본 아다다의 가슴이 이번에는 쿵~하고 내려앉는다.

 

이놈들아, 안 된다. 우리 방만은 안 된다. 아다다는 한 손으로는 놀 랜 가슴을 움켜잡고 한 손으로는 치마를 뒤집어쓰고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뻘건 괴물이 이내 아다다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밀어닥친다.

 

반장님! 여기 사람이 쪼그리고 있는데요.”

 

사람? 끌어내!”

 

철거반의 우악스러운 팔이 아다다의 힘없는 어깻죽지를 휘어잡고 밖으로 휙~ 던졌다. 아다다의 몸뚱이가 부엌 문짝에 철버덕하고 부딪친다.

 

순간 아다다는 아찔하다. 일어나야 하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도 할 수 없다. 사지가 축 늘어지고 있었다.

 

밖에서는 괴물 움직이는 소리가 윙윙거리고 가까이에서는 남자들의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반장님, 늙은 병신이 죽었는가 봐요. 움직이지를 않네요.” 1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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