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
“아비 없이 큰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남 보란 듯이 키우겠다는 생각이었어. 내가 생각하기엔 너의 어머니는 아마 어릴 때 읍내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장사에 환멸을 느낀 것 같아”
“아……, 어머니가 그런 면도 있었나요?”
“가끔 나에게 장사는 모두 도둑놈이라고 했어. 생산은 하지 않고 중간에서 이익만 챙기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말도 가끔 하였지. 그리고 선자는 너의 아버지한테 농사에 대한 애착이랄까, 귀중함이랄까, 그런 어떤 신념 같은 것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하지만, 나는 그런 너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어. 지금 생각하면 다소 이상주의자였어”
고모님은 또 막걸릿잔을 홀짝거린다. 고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엄마의 사건이 난 그해 나는 일곱 살이었다. 그즈음의 기억들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일들이다. 그 이전의 일은 거의 기억에 없으니까……,
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어 산과 들에는 새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위해서다. 학교까지는 한 오리는 되었나 보다. 시골길을 그렇게 오래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한참을 가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가 내 얼굴을 내려 보시더니 나를 엄마 등에 업히라고 하신다. 나는 좋아라, 엄마 등에 업혔다. 엄마는 나를 업고 길을 걸었다. 등은 마룻바닥처럼 단단하다. 그렇지만 매우 따뜻하고 포근하였다.
어릴 적엔 수도 없이 업혔을 터이지만 엄마 등에 업혀 본 기억은 그때가 처음이다. 업혀 가면서 사람들이 보지나 않을까 부끄러웠다. 조금 가다가 내렸다. 엄마와 나는 학교에 들어가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나이가 어려서 학교에 다닐 수 없단다. 만으로 일곱 살이 안 되었을 것이다.
당시 엄마는 마음이 급했던 것 같았다. 욕심을 내어, 나를 한 살 일찍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사실 난 학교 다니기 싫었는데 엄마가 가자고 해서 갔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학교 안 가게 된 것이 즐거워 깡충거리다가 엄마로부터 큰 꾸중을 들었다. 공부하기 싫으면 일꾼이나 되라고 핀잔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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