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02
그러나 김삿갓은 머리를 정중(鄭重)하게 수그려 보이며 이렇게 대답(對答)하였다.
<오(吳) 별감(別監) 댁(宅) 자제(子弟)분이 저를 다짜고짜 도둑놈으로 몰아붙이기에, 저는 오리와 공모(共謀)하여 옥관자(玉貫子)를 훔쳤노라고 대답(對答)했던 것이 옵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눈알을 부라리며 벼락같은 호통을 지른다.
<이놈아! 네놈이 미쳐도 보통(普通) 미친놈이 아니로구나, 오리는 말을 못 하는 동물(動物)이 아니냐, 옥관자(玉貫子)를 오리와 공모(共謀)하여 훔쳤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
그러나 김삿갓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태연자약(泰然自若)하였다.
<제가 미치고 안 미친 것은 두어 시간 뒤면 절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놈아! 네놈이 사또를 우롱(愚弄)해도 분수가 있지, 방자(放恣)하게 누구더러 기다려라, 말라 하느냐?>
<저같이 못난 놈이 어찌 감히 사또 어른을 우롱(愚弄)하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두어 시간만 더 기다리시면 저 청둥오리가 오 별감(別監) 댁 옥관자(玉貫子)를 반드시 돌려드릴 것이오니, 너무 조급(早急)하게 서두르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두어 시간만 더 기다리면 오리가 옥관자(玉貫子)를 배설(排泄)해 놓을 것이 분명하기에 김삿갓은 자신(自信)을 가지고 말했던, 것이다.
회양(淮陽) 군수(郡守) 이범호(李凡鎬)는 머리가 민첩(敏捷)하기로 소문난 사람인지라 김삿갓의 말에서 무슨 암시(暗示)를 받은 듯, 잠시 머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얼굴을 번쩍 들며 묻는다.
<옥관자(玉貫子)를 오리가 돌려주다니? 그렇다면 오리란 놈이 옥관자(玉貫子)를 삼켜 먹었기 때문에 두어 시간 후에는 똥으로 배설(排泄)해 놓을 것이라는 소리냐?>
사또가 그렇게 문초(問招)하는 바로 그때, 다리를 묶인 채 땅바닥에서 푸드덕거리던 오리가 별안간 몸을 움츠리더니 똥과 함께 옥관자(玉貫子)를 배설(排泄)해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옥관자(玉貫子)를 보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질렀다.
<사또 어른! 더 기다리실 것도 없습니다, 지금 막 오리가 옥관자(玉貫子)를 배설(排泄)해 놓았습니다.>
사또는 형리(刑吏)로 하여금 똥에 섞여 나온 옥관자(玉貫子)를 깨끗하게 씻어 올리라고 명(命)한다. 그리하여 손수, 검색(檢索)을 해 보니 그것은 오 별감(別監) 댁 옥관자(玉貫子)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에 사또는 크게 깨달은 바 있은 듯 고개를 신중(愼重)하게 끄덕이며,
<잃었던 물건을 찾았으니 저 사람은 결박(結縛)을 풀어 주어라>
형리(刑吏)에게 그렇게 명령(命令)하고 나서 이번에는 김삿갓에게 직접(直接) 묻는다.
<옥관자(玉貫子)를 오리가 삼켜 먹은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도둑놈으로 자처(自處)하고 나섰던 것인가?>
김삿갓은 오라가 풀리자, 몸을 털고 일어나 사또를 올려다보며 대답(對答)한다.
<오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제가 잠시 모든 죄(罪)를 뒤집어쓰고 나섰던 것이 옵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거듭 끄덕거리더니 다시 묻는다.
<오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죄(罪)를 뒤집어썼다는 것은 무슨 소린가?>
<저는 저 청둥오리가 옥관자(玉貫子)를 삼켜 버리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옥관자(玉貫子)를 찾으려는 젊은 양반(兩班)의 성미(性味)가 너무도 조급(早急)해 보였기 때문에 그 사실(事實)을 솔직히 말해 주면, 오리의 배를 가르고 옥관자(玉貫子)를 꺼내려고 하겠기에 어쩔 수 없이 제가 죄인(罪人)을 자처(自處)하고 나섰다는 말씀입니다,>
사또는 그 말에 크게 감동(感動)한 듯,
<허어! 오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대가 죄(罪)를 뒤집어쓰고 나섰다는 것은 이만저만 가상(嘉尙)한 일이 아니었구나, 그대는 그렇게도 지혜(智慧)로운 사람이었던가,>
<오리가 비록 미물(微物)이기는 하오나, 목숨이 소중하기는 모든 생물(生物)이 마찬가지인 줄로 아뢰옵니다, 도둑의 누명(陋名)을 잠시 뒤집어씀으로써 오리의 목숨을 구해 줄 수 있다면 그런 일이야 누군들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대의 말은 들을수록 명언(名言)이로구나! 그대는 이름을 뭐라고 하는가?>
<성명(姓名)조차 없이 구름처럼 떠돌아가는 몸이오니, 사또 앞을 이만 물려가게 해주시옵소서,>
김삿갓은 사또에게 작별(作別) 인사(人事)를 고(告)하고 돌아서더니 오(吳) 별감(別監) 댁(宅), 하인(下人)들에게 말한다.
<나의 삿갓과 지팡이를 돌려주시오>
김삿갓은 삿갓을 뒤집어쓰기가 무섭게 동헌(東軒) 대문(大門) 밖으로 총총(悤悤)히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183쪽~185쪽-계속-(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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