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실장한테 훈계받은 것에 살을 더 보태서 일장 훈시를 또 들었다.
“어허허, 선생. 사정은 딱하지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서 미안하오. 저 길을 돌아 시장 입구에 가면 <왕 부동산>이라고 있는데 거기가 우리 회장님이 하시는 사무실이니 그곳으로……”
뭐라고? 이 호랑말코 같은 놈아. 진작이 그렇게 말할 일이지. 남 애간장 다 태우고 조선팔도 폼은 다 잡고 그래 내 소관이 아니다 이 말씀인가,…… 아, 그래도 길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으흐흑
그 길로 <왕 부동산>을 찾아 들어서니 오십 대 스포츠머리를 한 씨름선수 스타일의 회장이 내가 오는 줄 미리 알고 있기라고 한 듯이 지긋이 쳐다본다.
회장님, 저 좀 살려주세요. 회원가입, ……, 회장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 내가 다 압니다. 제발 재가(裁可)하여 주시옵소서.
“선생님, 부자시네요. 계약금으로 50%나 걸다니, 부자는 부자 동네에서 영업해야죠. 우리 협회는 아직 가난합니다”
회장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왜 부잡니까. 부자면 뭐~하러 이런 어려운 사업 하려고 하겠습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저 잘할 수 있습니다. 잘하겠습니다. 오늘 점심이나 어떠신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허, 허허, 참 딱하다고요?
여기 앉자~보라고요. 고향은? 나이는? 학교는? 전 직장은? 퇴직 사유는? 가족은? 마누라 성은? 마누라는 몇 살? 야, 이거 죽인다! 죽여. 면접시험도 이런 시험이 없다. 커피 한 잔에 1시간 이상을 취조받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다 난다. 그럼, 면접은 통과되었나?
“사정은 알겠는데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부회장도 있고 총무도 있고, 내일 연락드리리다.”
어흐흐흥, 이런 호랑말코 같은 놈아! 이놈도 용장이로다. 어디 약장, 약졸은 하나도 없네. 다리에 힘도 하나도 없고……,
연락하마고 나가라는데 용뺄 재주 있나. 하지만 그런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자고로 위기는 기회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야 사는 법이다.
다음 날 <왕 부동산>으로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니, 마누라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생글생글 이다. 점포는 잘 되어가는 모양이지, 잘 다녀오세요! 라고, 오, 고마워. 이 세상에 날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마누라뿐이야. 으~으음
왕 부동산 문은 열려있었다. 회장님, 반갑습니다. 어제는 편히 주무셨나이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임원들이 오늘 점심때 사거리 원수사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계산하지요. 정오가 되니 회장, 부회장, 총무, 그리고 동백의 용장 이렇게 네 명이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음식은 뭐로 시킬까요. 음식? 메뉴는 알아서 결정하셨다고요. 네네 알겠습니다. 8).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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