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180

웅석봉1 2025. 6. 15. 10:18

구토는 왜 나올까?

 

() 속에 있는 음식물을 토하는 신체 반응(反應)을 구토라고 한다. 질병(疾病) 등으로 뇌()구토(嘔吐) 중추(中樞)가 자극을 받으면 구역(嘔逆)질이 나서 토할 것 같아라는 명령이 뇌()에서 위()로 전달된다. 이에 따라 위는 음식물(飮食物)을 몸 밖으로 내보내려고 토()한다.

 

감기(感氣) 등의 질병이나 과식(過食), 복통(腹痛) 등으로 토()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위장(胃腸) 등의 소화기(消化器)에 탈이 났을 때나 몸에 해로운 음식(飮食)을 먹었을 때 주로 구토 반응이 일어난다. 과음(過飮)의 경우에도 구토(嘔吐) 반응(反應)이 나타날 수 있다.

 

강한 냄새를 맡거나 속이 뒤집히는 장면(場面)이 나오는 영화(映畫)를 볼 때도 구토 중추가 자극을 받아 구토 반응(反應)이 나타날 수 있다. 구토(嘔吐)를 하면 몸에서 수분(水分)이 상실되므로 구토 후에는 수분을 충분히 보충(補充)해 줘야 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62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병신년 정월(15961)

 

11(무진/129)

 

맑다. 새벽 1시쯤 어머니를 방문하였다. 느지막이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司果, 이름은 , 6품직)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와 하직(下直)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12(기사/ 130)

 

맑다. 나라 제삿날(명종비 인순왕후 심 씨)이다. 일찍 나가서 병기들을 점검했다. 부장(部將) 이계(李繼)가 비변사(備邊司)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3(경오/131)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汝弼)과 조카들이 모두 배 위에 모여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 배를 띄우고 서로 작별하였다.

 

정오에 곡포(曲浦, 남해군 이동면 화계리) 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동풍)이 조금 불었다. 상주포(尙州浦,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잔잔해졌다. 노를 재촉하여 자정 무렵에, 사량(蛇梁)에 도착하여 잠을 잤다.

 

14(신미/21)

 

맑다. 새벽 1시쯤 첫 나팔을 불고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였다. 이여념(李汝恬)이 들어왔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예전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오후 4시쯤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걸망포(乞望浦, 통영시 용남면)에 이르니 경상 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후(虞候) 이몽구(李夢龜)가 먼저 배 위로 올라왔으나 몹시 취해 인사불성이어서 곧 그의 배로 돌아갔다고 했다.

 

송한련(宋漢連)과 송한(宋漢) 등이 말하기를, ‘청어 1,000여 두름을 잡아서 널어놓았는데, 또 통제사께서 행차하고 나서 잡은 것이 1,800여 두름이나 됩니다라고 말했다.

 

비가 몹시 내려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이 날이 저물자 떠났는데, 진흙 길에 넘어지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奇孝謹)과 김축(金軸)이 휴가를 받아 돌아갔다.

 

15(임신/22)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虞候)와 방답 첨사, 사도 첨사가 들어와서 문안했다. 나는 얼른 세수하고 방 밖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사정을 물었다.

 

느지막이 첨사(僉使) 성윤문(成允文), 우우후 이정충(李廷忠), 웅천(熊川) 현감 이운룡(李雲龍, 1562~1610), 거제 현령 안위(安衛, 1563~?), 안골포 만호(萬戶) 우수(禹壽), 옥포 만호 이담(李曇)이 왔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돌아갔다. 이몽상(李夢象)은 경상 수사 권준(權俊)의 심부름으로 왔다가 문안하고 돌아갔다.

 

16(계유/23)

 

비가 내렸다. 오수(吳壽)가 청어 1,310두름, 박춘양(朴春陽)780두름을 가지고 왔다. 히천수(河天壽)가 이를 받아 말리기로 했다. 황득중(黃得中)202두름을 가지고 왔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 첨사가 술을 가지고 와서 보고하기를 군량 500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7(갑술/24)

 

맑다. 이영남(李英男, ?~1598)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 아침 일찍 와서 권숙(權俶)이 나와 육체관계를 가지려고 해서 피해 왔는데 곧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저녁나절에 경상 수사와 우후(虞候), 사도 첨사, 방답 첨사가 오고 권숙(權俶)이도 왔다. 오후 2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伏兵將)인 삼천포 권관(權管)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인 5명이 부산에서 왔다고 하여 안골포 만호 우수(禹壽)와 공태원(孔太元)을 보냈다. 날씨가 매우 춥고 하늬바람(서풍)이 매섭게 불었다.

 

) 권숙(權俶)은 성균관 박사 이치(李致)의 사위다. 이치는 덕수 이씨로 이순신의 증조부 이거(李琚)의 아우 이찬(李璨)의 손자이다.

 

18(을해/25)

 

맑다. 입춘(立春)인데 날씨가 마치 한겨울처럼 매섭게 춥다. 아침에 우수사 우후(虞候)와 방답 첨사를 불러서 함께 약밥을 먹었다.

 

아침 일찍 투항(投降)한 왜인 5명이 들어왔기에, 투항한 이유를 물으니, 그들의 장수가 성질이 포악(暴惡)하고 일도 고되어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 도망쳐서 투항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소지한 칼들을 거두어 누대에 숨겨두었다. 그런데 그들은 부산에 있던 왜인이 아니고 가덕도에 있는 심안돈(沈安頓, 島津義弘)의 부하라고 하였다.

 

19(병자/26)

 

흐린 날씨에 살을 깎아 내는 듯이 춥다. 오수(吳壽)가 잡아 온 청어 360두름을 하천수(河千壽)가 실어 갔다. 각처에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저물녘에 경상 수사가 와서 방비(防備) 대책을 논의했다. 하루 종일 하늬바람(서풍)이 불어서 배를 띄우지 못했다.

 

110(정축/27)

 

맑으나 하늬바람(서풍)이 거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왜적이 다시 나타날지를 점을 치자 바퀴 없는 수레와 같다는 점괘가 나왔다. 여차무륜(如車無輪), 그래서 다시 점을 쳤더니 임금을 뵙는 것과 같다는 점괘가 나왔다. 여견군왕(如見君王), 그래서 길한 괘라고 모두가 기쁘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우수사 우후(虞候)와 어란포 만호(萬戶)가 왔다. 사도 첨사도 왔다.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나누어 중 여러 물품을 세 위장(衛將)에 나누어 주었다. 웅천 현감(縣監)과 곡포 권관(權管), 삼천포(三千浦) 권관과 적량 만호(萬戶, 4품의 수장)가 함께 왔다.-180-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