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156

웅석봉1 2025. 5. 18. 11:32

적혈구는 무슨 일을 할까?

 

혈액의 약 45%를 차지하는 적혈구(赤血球)는 산소를 온몸으로 공급하고 몸속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모으는 배달부(配達夫)와 같다. 원반 모양인데, 가는 혈관을 지날 때는 날씬해졌다가 통과하면 다시 원래 모양으로 돌아간다. 적혈구의 수명(壽命)은 약 120일이다.

 

피가 붉게 보이는 것은 적혈구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蛋白質)이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은 동맥(動脈)을 지날 때 검붉은색을 띠는데, 운반하는 산소의 양이 많으면 선명한 빨간색으로 변한다. 참고로, 메뚜기, 문어, 오징어처럼 혈액이 파랗게 보이는 생물도 있다.

 

적혈구가 감소하면 세포 속 산소가 부족해서 호흡 곤란, 가슴 두근거림, 현기증(眩氣症) 등의 빈혈(貧血) 증상이 나타나고, 적혈구가 너무 많아지면 얼굴이 불그스레해지거나 두통(頭痛)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38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421(계해/529)

 

맑으나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대청에 올라 활 10 순을 쏘았다.

 

422(갑자/530)

 

맑다. 오후에 미조항 첨사(僉使), 웅천 현감, 적량 만호, 영등포 만호(萬戶)와 두 조방장이 함께 왔다. 정사준(鄭思竣, 판관 정승복의 아들)이 보낸 술과 고기 등 안주를 같이 먹으면서 남해 현령이 군령을 어기었으니 효시하라는 글을 읽었다.

 

) 정사준은 아우들과 함께 쌀 천 석을 가지고 이순신을 도왔다. 우수한 총통을 만들고, 광양(光陽) 현의 복병장(伏兵將)일 때 상중인데도 경계 임무를 완수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선조 36(1603) 가을에 이순신의 덕을 기리고, 비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중국 고사에서 인용)는 타루비(墮淚碑, 보물 제1288)를 세웠다.

 

비석에는 새겨진 글을 소개하면, 영하수졸위통제사(營下水卒爲統制使) 이공순신립(李公舜臣立) 단갈명왈타루(短碣名曰墮淚), 해석하면, 수영 휘하 수군 병졸들이 통제사 이순신을 위하여 작은 비를 세워 이름을 타루라 한다.

 

423(을축/531)

 

맑다. 마파람(남풍)이 거세게 불어 배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라 수루(戍樓,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성 위에 지은 망루)에 올라 공무를 보았다.

 

424(병인/61)

 

맑다. 이른 아침에 아들 울(), 조카 뇌(). ()을 어머니 생신상 차리는 일로 내보냈다.

 

정오에 강천석(姜千石)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도망간 왜놈 망기시로(望己時老)가 우거진 풀 속에 엎드려 있다가 붙잡혔고, 한 놈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하였다. 망기시로를 바로 압송해 오게 하고 삼도(三道)에 나누어 둔 왜놈들 모두를 모아 즉시 목을 베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망기시로는 당당히 죽으러 나왔다고 하니 참으로 독한 놈이었다.

 

) (, 1575~1627)은 이순신의 조카로 19세에 숙부인 이순신을 따라 왜적을 토벌하고 충청 병사로서 이괄(李适, 1587~1624)이 난을 평정하였다. 이순신이 노량에서 전사할 때 회()와 함께 임종했다. 현충사에 배향(配享)되었다.

 

425(정묘/62)

 

맑고도 바람도 없다. 구화역(仇化驛) 역졸 득복(得福)왜적의 대선. 중선. 소선 등 50여 척이 웅천에서 나와 진해(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로 향한다는 경상 우후(虞候)의 급보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오수(吳水) 등을 내보내어 정탐토록 했다. 흥양(興陽) 현감(縣監)이 와서 보았다. 사량(蛇梁) 만호가 아뢰고 돌아갔다. 아들 회()와 조카 해()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전하니 매우 다행이다.

 

426(무진/63)

 

맑다. 새벽에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가 조방장 신호(申浩, 1539~1597)와 함께 자기 소속의 배 20여 척을 거느리고 탐색차 나갔다. 저녁에 동지사(同知事) 권준(權俊), 흥양(興陽) 현감(縣監), 사도 첨사, 여도 만호와 함께 활 20 순을 쏘았다.

 

427(기사/64)

 

맑으며 바람도 없다. 몸이 불편하다. 권준(權俊), 미조항 첨사(僉使), 영등포 만호(萬戶)가 와서 같이 활 10 순을 쏘았다. 자정에 전라 우수사가 적을 수색, 토벌하고 진영으로 돌아와서 어느 곳에도 적의 종적은 없다고 말했다.

 

428(경오/65)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대청으로 나아가 공무를 보았다. 우수사와 경상 수사가 와서 활을 쏘았다. 송덕일(宋德馹, ?~?)이 하동 현감을 잡아 왔다.

 

429(신미/66)

 

새벽 2시경 비가 내리더니 아침 6시경에 깨끗이 개었다. 해남 현감과 공사례(公私禮)를 마친 뒤에, 하동 현감이 2번이나 약속을 어겨 그 죄로 곤장 90대를 치고, 해남 현감에게도 곤장 10개를 때렸다.

 

미조항 첨사(僉使)는 보고하고 휴가를 떠났다. 세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했다. 노윤발(盧潤發)이 미역 99동을 따서 가지고 왔다.

 

430(임신/67)

 

맑다. 10 순을 쏘았다. 아침에 권율(權慄, 1537~1599) 원수의 계본(啓本, 임금에게 아뢸 때 올리는 문서)과 기()씨와 이()씨 등 두 사람의 공초(供招, 죄인의 진술) 초안을 보니 원수가 근거도 없이 망령되게 아뢴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그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런 지경인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앉을 수 있단 말인가. 괴이한 일이다.

 

) 사헌부에서 권율을 심문하라고 청한 글에 권율은 대장으로서 거제에 주둔한 날 싸우지 않고 전라도에 은닉했는데, 각 장수의 전공과 죄과를 정확히 보고하지도 않았다라고 하였다. 선조실록(1594116) -156-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