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137
●역류성 식도염이 뭘까?
강산성인 위(胃) 내용물이 식도(食道)로 역류해 속쓰림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식도 하부에는 위(胃) 내용물이 역류(逆流)하는 것을 방지하는 근육(괄약근)이 있다. 이 근육의 힘이 약해지면 위(胃) 내용물이 식도로 되돌아오는데, 이는 산성(酸性)이 강해 식도가 손상될 수 있다.
역류성(逆流性) 식도염의 증상(症狀)으로는 속쓰림(명치와 배꼽 사이의 소화기관이 화끈거리고 쓰린 증상), 신물(시큼한 위액이 목으로 올라오는 느낌)을 비롯해 가슴 통증(痛症), 기침 등의 불편감과 귀통증 등이 나타난다.
나이를 먹으면 역류를 방지하는 괄약근(括約筋)의 힘이 약해져 억류가 일어나기 쉽다. 비만과 과식(過食)으로 위가 압박되어도 음식물이 되넘어오는 역류성 식도염(食道炎)이 발생할 수 있다. 과식하지 않는 식습관(食習慣)이 중요하다. 원래 아시아권에는 드문 질병이었는데, 식생활(食生活)이 서구화되면서 역류성 식도염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19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9월 24일(기해/22월 6일)
맑았지만 바람은 종일 불었다. 아침에 대청에서 공무를 보았다. 충청 수사와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오늘 더그레<호의(號衣)>를 나누어 주었는데, 좌도에는 누런 옷 9벌, 우도에는 붉은 옷 10벌, 경상도에는 검은 옷 4벌이었다.
주) 호의(號衣, 더그레)는 각 진영의 군사와 사간원, 의금부 관원들이 입던 세 자락의 웃옷이다. 전투복과 비슷하나 양옆을 세 자락으로 터져있음. 소속에 따라 다른 색깔(흑, 적, 청, 황)을 넣었다.
9월 25일(경자/11월 7일)
맑다. 바람이 좀 잠잠해졌다. 첨지 김경로(金敬老, ?~1597)는 군사 70명을 거느리고 들어왔고, 저녁에는 첨지 박종남(朴宗男, ?~1601)은 군사 600명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조붕(趙鵬)도 와서 같이 자면서 밤새 이야기했다.
9월 26일(신축/11월 8일)
맑다. 새벽에 곽재우(郭再祐, 1552~1617)와 김덕령(金德齡, 1567~1596) 등이 견내량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박춘양(朴春陽)을 보내어 건너온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수군과 합세하기 위하여 권율(權慄, 1537~1599)의 전령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주1) 곽재우는 과거에 합격했으나 왕의 뜻에 거슬려 무효가 되었는데, 정탁(鄭琢, 1526~1605)의 천거로 조방장이 되었다. 1594년 9월 이순신, 원균과 함께 장문포 전투에 참전하였다.
주2) 김덕령은 고경명의 휘하로 충용장(忠勇將)이 되고 1594년 진주에서 곽재우와 함께 권율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이몽학(李夢鶴, ?~1596)의 난을 평정하려고 했으나, 이몽학과 내통 혐의를 받고 수감(收監)되었다가 옥사하였다.
9월 27일(임인/11월 9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녘에 비가 잠깐 내렸다. 느지막이 출항하여 포구에 나가자 여러 배들도 일제히 출항하여 적도(거제시 둔덕면) 앞바다에 다다랐다. 곽재우(郭再祐, 1552~1617), 김덕령(金德齡, 1567~1596), 한명련(韓明璉, ?~1624), 주몽룡(朱夢龍, 1561~1633) 등이 함께 와서 약속한 뒤에 각각 원하는 곳으로 나누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저녁에 선거이(宣居怡, 1550~1598)가 도착하여 본영(전라좌수영)의 배에 오르게 했다. 저물녘에 체찰사(體察使)의 군관 이천문(李天文), 임득의(林得義, 1558~1612), 이홍사(李弘嗣), 이충길(李忠吉), 강중룡(姜仲龍), 최여해(崔汝諧), 한덕비(韓德備), 이안겸(李安謙), 박진남(朴振男) 등이 왔다. 밤에 잠깐 비가 내렸다.
9월 28일(계묘/11월 10일)
흐리다.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서 왜적을 칠 일의 길흉을 점쳤더니,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여궁득전(如弓得箭)>의 점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치니, 산이 움직이지 않은 것과 같다<여산부동(如山不動)>의 점괘가 나왔다.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다. 진을 흉도(胸島, 거제시 사등면) 안쪽 바다로 옮겨서 잠을 잤다.
9월 29일(갑진/11월 11일)
맑다. 출항하여 장문포(長門浦, 거제시 장목면) 앞바다로 쳐들어가니 왜적들이 험하고 높고 가파른 언덕을 막아 지키고 있었다. 누각을 높이 짓고 양쪽 봉우리에는 진지를 쌓고서 항전하러 나오지 않았다. 선봉의 적선 2척을 무찔렀더니, 뭍으로 내려가 달아나 버렸다. 빈 배들만 쳐부수고 불태웠다. 칠천량에서 밤을 지냈다.
주) 이날이 장문포 해전을 치른 날이다. 1594년 8월 17일 이순신이 권율, 곽재우와 작전을 세워 9월 29일 장문포에서 수륙병진으로 진격하였으나 왜적들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 왜적 두 척을 분멸(焚滅)하였다. -137-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