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105
●기생충은 어떤 생물일까?
인간과 동물에 빌붙어 사는 아주 작은 생물이 기생충(寄生蟲)이다. 이 벌레는 사람과 동물의 몸속에 들어붙거나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 사람과 동물(動物)을 먹는다. 기생충이 보금자리로 삼은 사람이나 동물을 숙주(宿主)라고 하는데, 기생충은 이 숙주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촌충(寸蟲)의 일종인 광절열두조충(廣節裂頭條虫)은 주로 설사를 일으킨다. 기생충 중에는 설사를 일으키지 않고 변비(便祕)를 일으키는 회충(蛔蟲)도 있다. 고래회충은 인간에게 기생하지 않고 어패류(魚貝類)에 기생했다가 인간이 섭취하면 식중독의 원인이 된다.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기생충이 가장 많다. 날생선이나 고기, 채소(菜蔬)에는 대개 기생충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또 개와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伴侶動物), 모기와 파리 등의 해충(害蟲)으로부터 옮을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8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2월 5일(갑인/3월 26일)
맑다. 꿈속에 좋은 말을 타고 바위가 첩첩으로 쌓인 산마루로 곧장 올라가니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동서(東西)로 뻗어 있고, 산마루 위에는 평평한 곳이 있어 거기에 자리 잡으려다가 깨었다. 무슨 징조인가 모르겠다. 또, 어떤 미인이 홀로 앉아 손짓하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상대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다.
아침에 군기감(軍器監, 무기 관리 관청)에서 흑각궁(黑角弓, 무소뿔 활) 100개와 화피(樺皮, 벚나무 껍질) 89장을 셈하여 서명했다. 발포 만호 황정록(黃廷祿), 우수사 우후 이정충(李廷忠)이 와서 함께 식사했다. 저녁나절에 사정(射亭)에 올라 우조방장(右助肪將) 어영담(魚泳潭), 우수사 우후(虞候) 이정충(李廷忠), 여도 만호 김인영(金仁英) 등과 활을 쏘았다.
유격장군 심유경(沈惟敬)이 벌써 화친을 결정했다는 원수 권율(權慄)의 회답 공문이 왔다. 그러나 간사한 꾀와 교묘한 계책은 헤아릴 수 없다. 전에도 놈들의 꾀에 빠졌었는데, 또 이처럼 빠져드니 한탄스럽다. 저녁에 날씨가 찌는 듯해서 마치 초여름 같았다. 밤 10시경 비가 내렸다.
주) 심유경은 평양에서 고니시 유키나가를 만나 화친을 결정했으나 이여송(李如松)이 이 화친을 파기했다. 1596년 조명일(朝明日) 3국 간에 강화회담은 파기되고 결국 정유재란을 초래했다.
2월 6일(을묘/3월 27일)
비가 오다가 개다가 한다. 순천 부사 권준(權俊)과 웅천 현감 이운룡(李雲龍)과 사도 첨사 김완(金浣)이 왔다. 저물녘에 흥양(興陽) 현감(縣監)과 김방제(金邦濟)가 황향(黃香, 유자) 30개를 가져왔는데 방금 딴 것 같았다.
2월 7일(병진/3월 28일)
맑다. 하늬바람(서풍)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우조방장(右助肪將) 어영담(魚泳潭)이 와서 만났는데 <차선(次船, 부 지휘선)을 타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홍군우(洪君遇), 이숙도(李叔道), 강인중(姜仁仲)에게 보내는 문안 편지를 분(芬)이 가는 편에 부쳤다. 조카 봉(峯)과 분(芬)이 같이 떠나는데, 봉은 나주(羅州)로 가고 분은 온양으로 갔다.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각 배에 청원서 200여 장을 써서 나누어 주었다. 고성 현령 조응도(趙凝道)로부터 <적선 50여 척이 춘원포(春院浦, 통영시 광도면 예포)에 도착했다>는 급한 보고가 왔다. 삼천포(三千浦) 권관(權管), 가배량(加背梁) 권관 제만춘(諸萬春)이 와서 서울로 기별을 전했다.
군대를 개편하고 격군을 각 배로 옮겨 실었다.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에게 죄인을 잡아 오라는 전령을 내렸다. 낙안 군수 신호(申浩)의 편지가 왔는데 <새 군수로 김준계(金俊繼)가 부임했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그에게도 죄인을 붙잡아 오도록 명했다. 보성의 전함 2척이 들어왔다. 소비포 권관 이영남(李英男)이 와서 만났다.
2월 8일(정사/3월 29일)
맑다. 동풍이 거세게 불고 몹시 추웠다. 조카 봉(峯)과 분(芬)이 배로 떠난 것에 걱정이 되어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순천 부사 권준(權俊)이 와서 <고성 땅 소비포(所非浦)에 왜적선 50여 척이 배회한다>고 보고했다. 곧바로 제만춘(諸萬春)을 불러 지형이 어디가 유리한지 물었다.
저녁나절에 사정(射亭)에 올라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우병사(右兵使) 박진(朴晉)의 군관이 편지를 가져와서 자기 장수의 방지기(사내종)가 천민 신분에서 벗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진주에서 피란한 전 좌랑(前佐郞) 이유함(李惟諴, 1557~1609)이 와서 대담하고 저녁에 돌아갔다.
바다 위의 달빛이 밝고 상쾌하여 잠이 오지 않는다. 순천 부사와 우조방장(右助肪將)이 와서 만나고 밤 10시경 헤어졌다. 변존서(卞存緖)가 당포(唐浦)로 가서 꿩 7마리를 사냥해 왔다. -105)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