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80

웅석봉1 2025. 2. 23. 14:40

 

목이 왜 따끔따끔 아플까?

 

감기에 걸리면 목이 빨갛게 붓거나 따끔거리면서 아플 때가 있다. 이는 백혈구(白血球) 등이 바이러스와 세균(細菌)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목은 우리 몸에서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기관이라서 염증(炎症)이 발생하기 쉽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재채기하면 침방울 속의 바이러스와 세균이 퍼진다. 이때 호흡(呼吸)하거나 감기 바이러스, 세균이 묻은 손으로 입을 만지면 감기(感氣)에 걸린다.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와는 다르다)와 아데노바이러스 등이 감기의 주요 원인이다.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나 세균 질환(疾患)이 아니어도 목이 아플 수 있다. 입으로 호흡해 목 점막이 건조(乾燥)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거나, 매운 음식(飮食) 등으로 강한 자극을 받으면 목이 아플 수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62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계사년 6(15936)

 

61(갑신/629)

 

아침에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왔다. 어머니의 편지에 평안하시다니 다행이다. 아들과 조카 봉<, 1563~1650, 이순신의 형 요신(堯臣)의 맏아들>의 편지도 같이 왔다.

 

명나라 양보(楊甫)가 왜적의 물건을 보고는 기뻐하여 말() 안장(鞍裝) 하나를 가져갔다고 했다.

 

순천 부사와 광양 현감도 같이 와서 만났다. 충청 수사 정걸(丁傑)도 왔다, 나대용(羅大用)과 김인문(金仁問), 방응원(方應元)과 조카 봉도 왔다.

 

충청 수사 정걸(丁傑)과 조용히 대화했다. 그와 저녁을 같이 하며 들으니, ‘황정욱(黃廷彧)과 이영(李瑛)이 강가로 나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한심스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날은 맑았다.

 

1) 탐후선(探候船)은 연락을 담당하는 배로 사람은 물론 서신 등도 전달하였다.

 

2) 황정욱(黃廷彧, 1532~1607)은 호소사(號召使)가 되어 왕자 순화군을 시종했는데, 희령에서 포로가 되어 가토 기요마사의 강요로 항복 권유문(勸誘文)을 작성했다. 이듬해 왜군이 철수(撤收)하면서 석방되었으나 권유문을 쓴 문제로 길주에서 유배 중에 사망했다.

 

62(을류/630)

 

맑다. 아침에 본영의 문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온양의 강용수<姜龍壽, 1575~1626, 아산에 거주하며 형 봉수(鳳壽)와 함께 참전>가 진영으로 와서 명함을 내고 면회를 청하여 들어와 만났다. 그러고는 먼저 경상도 본영으로 갔다. 판옥선과 군관 송두남(宋斗男), 이경조(李景祚)와 정사립(鄭思立) 등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순찰사 권율(權慄)의 군관이 공문을 가지고 왔다. 왜적의 정세를 살피고 돌아가는데 우수사와 상의해서 답장을 보냈다. 강용수(姜龍壽)에게도 군량미 5 말을 주었다. 원견<(元埍, 원균(元均)의 동생으로 추정>이 함께 왔다고 했다.

 

정 영공(丁傑, 1514~1597)도 배에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리포 첨사 우경(虞卿) 구사직(具思稷)이 와서 1시간가량 이야기했다. 저녁에 송아지를 잡아 같이 먹었다.

 

) 송두남(宋斗男)은 송전(宋筌)의 아우로 활쏘기를 잘하였다. 이순신의 군관이 되어 조정과 유성룡(柳成龍)의 전달 역할을 하였고, 1596년 동복 현감이 되어 1년간 모후산(母后山)에서 친족을 잘 보살폈다.

 

63(병술/71)

 

새벽에 맑더니 저녁나절에 큰비가 내렸다. 비 때문에 활쏘기도 포기하고, 지휘선에 연기 그을리기를 위해 좌별선으로 옮겨 탔다. 배 위를 살피니 비가 새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고, 앉을 수 있는 마른자리도 없으니 탄식할 뿐이다. 평산포 만호 김축(金軸)과 소비포 권관(權管) 이영남(李英男)과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 등이 와서 보았다.

 

저물녘에 순찰사 권율(權慄)과 순변사 이빈(李賓) 병사 선거이(宣居怡)와 방어사(防禦使) 이복남(李福男) 등의 답장이 왔는데, 딱한 사정이 많았다. 각 도의 군마가 많아야 5,000필을 넘지 못하고, 군량도 거의 떨어졌다고 했다. 왜적들의 발악이 날로 더해 가는데, 모든 일이 이러하니 어쩌랴! 초경에 본선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 연기 그을리기는 배의 부식을 막기 위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배 아랫부분을 생나무 연기로 그을렸다. 경국대전-80)-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