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108

웅석봉1 2024. 12. 17. 13:20

요통(腰痛)은 왜 생길까?

 

허리가 아픈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추간판 탈출이나 뼈 변형으로 허리가 아플 수도 있고, 허리 근육이 손상되어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 스트레스가 요통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로 오래 있으면 추간판과 관절에 부담을 주어 해당 부위가 손상되어 통증이 발생한다. 척추는 척추뼈라는 작은 뼈가 세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주위를 근육이 감싸고 있는데, 허리를 앞으로 숙이면 등뼈 관절에 큰 부담을 준다.

 

만약 허리에 갑작스럽게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면 다른 질병을 의심해 볼 수도 있다. 가령 허리 주위 혈관이 부풀어 파열되는 대동맥류 파열도 요통을 유발할 수 있다. 이상 증세를 느끼면 즉시 병원에 가자. 요통을 치료하면 장과 허리 주위 혈액 순환이 개선되어 위와 장의 움직임도 활발해진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295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초가을의 제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절부암 앞에 있는 올레 간세에 눈도장을 찍고 버스 정류장을 향하여 들길을 걸어 나갔다. 걷기에 좋은 날씨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대정읍으로 나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 생활을 한 추사기념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념관 내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외부만 보자. 추사가 유배 생활을 했다는 곳에는 <추사 김 선생 적려 유허비(謫廬 遺墟碑)>가 추사만큼이나 외로이 서 있다.

 

유배객이 거처한 방을 <모거리>라 하고 주인이 거처한 방은 <안거리>라고 하였고,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합친 곳을 <돗통시>라 하였으며, 제주 특유의 정낭이라는 출입문도 있다.

 

지금 추사의 유배지로 꾸며놓은 곳은 강도순의 집터에 송계순의 집을 복원한 것이라고 전한다. 추사가 귀양살이 한 집의 당호를 귤중옥(橘中屋)이라고 했다. 귤중옥은 귤나무 속의 작은집이라는 뜻이다.

 

추사가 위리안치된 곳은 대정읍 성() 안동네 송계순의 집이었다가 그 후 강도순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에 유배가 끝나갈 무렵에는 식수의 불편 때문에 안덕계곡으로 옮겼다고 한다.

 

추사의 일대기는 널리 알려져서 생략하고 그의 불후의 명작인 <세한도>만 간략히 소개하면, <세한도(歲寒圖)>는 헌종 10(1844) 추사의 나이 59, 제주도에 유배당한 지 5년째 되었을 때 그렸다.

 

세한도는 동그란 창이 나 있는 소담한 서재, 그리고 노송 한 그루와 곰솔 세 그루가 그려진 단아한 문인화(文人畵). 문인화는 전문 화가가 아닌 사대부 계층이 여가로 그린 그림이다.

 

세한도의 발문을 보면 <세한연후 지송백 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 之後彫也)>라는 문구에서 <세한도>라는 용어를 차용(借用)했다. 이 문구는 논어 자한편(子罕篇) 27장에 나오는 고사다. 풀이하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았음을 안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소나무나 잣나무의 푸르름을 잊고 있다가 한겨울에 온 산이 눈으로 덮여있어야 그 푸르고 고고한 진가를 알아본다니 이 얼마나 명쾌한 해석인가, 세상 이치와 다르지 않겠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그려준 것이다. 역관(譯官)인 이상적은 스승이 귀양살이하는 동안 해마다 정성을 다하여 연경에서 구해온 진기한 책들을 보내주었다. 추사로서는 그런 제자가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이 그림을 중국 사신으로 동행하여 청나라 학자 16명에게 보이고 그들로부터 찬()하는 글을 받아서 세한도에 붙였다. 이것이 세한도의 청유십육가(淸儒十六家) 세찬이다.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추사(秋史)의 호()는 완당(玩堂), 예당(禮堂), 시암(詩菴), 노과(老果), 농장인(農丈人), 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무수히 많아서 일명 백호당(百號堂)이란 또 하나의 호가 생길 정도다. 추사기념관을 바람처럼 둘러보고 대정읍 성()을 떠나니 하루해가 서산으로 꼬리를 감추는 중이었다. -108)-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