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41

웅석봉1 2024. 9. 24. 12:20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의 별책부록이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를 온전하게 그려보려고 별책부록을 보는데 오후 시간을 다 집어넣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전시품이 적지 않았지만, 눈길을 끈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아크로폴리스 신전의 축소 모형, 이것을 먼저 보고 아크로폴리스에 올랐다면 파르테논의 원래 보습을 더 실감 나게 상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파르테논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건물의 3, 엘긴이 뜯어간 프리즈의 부조와 페디먼트 조각상의 위치와 모양을 공간으로 표시해 놓았다. 파르테논의 대리석을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그런 방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셋째는 2층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세워둔 5개의 진품 *카리아티드. 사람들은 복제품보다는 진품을 귀하게 여기지만 *카리아티드 만큼은 복제품이 진품보다 나았다. 진품이 복제품 같았고, 복제품이 오히려 진품 같았다.

 

바닥을 딛고 현관 지붕을 인 에레크테이온의 *카리아티드 복제품은 그 모습이 힘차고 우아했지만, 머리에 아무것도 이지 않는 채 박물관 바닥 위에 한 뼘 높게 떠 있는 진품의 모습은 흔한 고대 조각상에 지나지 않았다.

 

산성비와 지진의 위험 때문에 진품을 박물관에 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에레크테이온의 현관 지붕과 바닥도 복제품을 만들어서 진품과 함께 전시했다면 진품이 더 진품다웠을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2층의 테라스 카페였다. 디오니소스 극장과 아크로폴리스의 동남쪽 경사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테라스에서 *프라페를 마시는 동안 대영박물관 전시실에 혼자 서 있을 *카리아티드가 자꾸 눈에 밟혔고, 치즈 조각처럼 잘려 나간 파르테논의 조각상들이 떠올랐다.

 

아테네는 상상력만 부추기는 게 아니라 아련하게 슬픈 감정도 안겨주는 도시였다. *카리아티드는 여성의 얼굴 모습을 상상하여 조각한 작은 돌.*프라페는 프랑스어로 얼음을 차갑게 식힌다는 의미의 아이스커피.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42~44쪽에서,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길은 또, 월정리 어촌계를 지나 포구와 소공원으로 이어진다. 단아한 공원 정자에는 올레꾼들이 간식을 풀어놓고 맛있게 먹고 있다. 네 쌍의 커플인데 연배가 우리와 비슷하여 반가웠다.

 

-수고들 하십니다! 보기가 좋습니다!

 

내가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더니, 그쪽에서도 <그쪽도 보기 좋습니다>하고 답례가 왔다. 우리는 올레 4일 차 걷고 있다고 하니, 그들은 한 달째 걷고 있고, 내일이면 완주 목표가 끝난다고 자랑스러워한다.

 

-대단하십니다!

 

하니, 모두가 은퇴한 사람들, 남는 게 시간이라 살면서 걷는다고 우쭐거린다. 어떻게 살면서? 물었더니 제주에 월세방을 얻어 살면서 매일 걷는다고 대답한다. 때로는 밤에 서로 마실도 다니면서……

 

대전에서 온 이들은 아예 승용차를 가지고 입도(入島)하여 일정을 소화한다고 했다. 아침에 승용차로 올레 출발지에 오고, 돌아갈 때는 운전하는 두 사람이 택시를 이용, 이동하여 출발지에 있는 차를 가지고 와서 일행이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니 시간 구애받지 않아 자유롭고, 좋은 음식 찾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우리도 언젠가 한 번 해보리라 마음먹으며 찬사를 보냈다.

 

월정리 해수욕장도 모래가 참 희고 깨끗하다. 해변엔 길손들이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의자들을 많이 배치해 두었다. 그날 해변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휴일이라 많이 나온 모양이다.

 

우리는 해변의 끝자락에 자리한 약간 허름한 식당에서 간단하지만 알찬 점심을 먹었다. 역시 외관이 허름하면 속은 야무지게 되어있다.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것이리라. 중늙은이 식당 주인은 올레길이 열린 이후로 손님이 늘었다며 크게 입을 벌렸다. -41)-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