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60
6월 7일(을사/ 7월 15일)
맑다. 적선을 찾으러 아침에 출항해서 영등포(永登浦,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에 이르니, 적선이 율포(栗浦,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에 있다고 해서 복병선(伏兵船)에 명하여 탐지하게 했더니,
적선 5척이 먼저 우리 군사들을 인지하고 남쪽 큰 바다로 도주했다. 우리의 전선들이 일시에 추격하여 사도 첨사 김완이 1척을 나포(拿捕)했고,
우후(虞候) 이몽구(李夢龜)도 1척을 나포, 녹도 만호 정운도 1척을 온전히 나포했다. 왜적들의 수급도 모두 합하여 36급이었다. 우하하
6월 8일(병오/ 7월 16일)
맑다. 우수사(이억기)와 의논하면서 바다 위에서 머물면서 하루를 지냈다.
6월 9일(정미/ 7월 17일)
맑다. 곧장 천성(天城, 부산 강서구 가덕도 천성동)과 가덕(加德, 강서구 가덕도 성북동)에 이르니 왜적이 하나도 없었다. 두세 차례 수색하고 나서 군사를 돌려 당포(唐浦)로 돌아와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오기 전에 배를 출발시켜 미조항(彌助項) 앞바다에 도착하여 우수사(이억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 천성(天城) 일대에는 천성진성(天城鎭城)이 현존하고 가덕(加德) 일대에는 천가초등학교와 덕문중학교가 위치한다.
6월 10일(무신/ 7월 18일)
맑다. 6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 일기는 빠져있다. 빠진 날은 3차 출정이 있었고, 육지에는 용인. 웅치. 이치. 금산 전투 등 전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서 기록하지 못한 듯하다.
8월 24일(신해/ 9월 29일)
맑다. 객사 동헌에서 정영공(丁令公, 정걸)과 같이 아침밥을 먹은 뒤에 곧장 침벽정(浸碧亭)으로 옮겼다.
우수사(이억기)와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정(鄭) 조방장(助防將, 정걸, 1514~1597)도 함께하였다. 오후 4시쯤 배를 출항시켜 노질을 재촉해서 노량 뒤쪽 바다에 이르러 정박했다.
자정 무렵 달빛을 타고 배를 몰아 사천(泗川) 모자랑포(毛自郞浦,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 삼천포)에 이르니 벌써 날이 밝았지만, 새벽안개가 사방에 끼어서 가까운 거리도 분간키 어려웠다.
주) 모자랑포(毛自郞浦)는 사천시 송포동의 모충공원에서 미룡마을 사이에 해당하는 앞바다인데 이 일대에 모래와 띠 풀이 많아 본래는 모사랑포(毛沙郞浦)인데, 모자랑포라고도 한다.
8월 25일(임자/ 9월 30일)
맑다. 오전 8시경 안개가 걷혔다. 삼천포 앞바다에 이르니 평산포(平山浦) 만호(萬戶)가 공장(工狀, 공식적인 편지, 내용은?)을 바쳤다. 당포(唐浦)에 거의 다 와서 경상 우수사(원균)와 만나 배를 매어 놓고 대화를 했다.
오후 4시쯤 당포(唐浦)에 정박해서 밤을 지냈다. 삼경(三更, 밤 11시~새벽 1시)에 비가 잠깐 내렸다. -60)-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