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57

웅석봉1 2024. 7. 5. 15:01

420(기유/ 530)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영남 관찰사(김 수)가 다급히 전문을 보내왔는데, ‘적들이 떼거리로 휘몰아 쳐들어오니 그 예봉에 맞설 수가 없고, 싸움에서 이긴 기세를 타고 몰아치는 것이 마치 무인지경(無人之境)에 들어간 것 같으니, 전투 배를 정비해 와서 지원하는 일에 대한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고 했다.

 

) 영남 관찰사의 심정이 다급하다.

 

421(경술/ 531)

 

맑다. 성 위에 군사를 줄지어 서도록 과녁 터에 앉아서 명령을 내렸다. 오후에 순천 부사(권준)가 달려와서 약속을 듣고 갔다. ) 진법 훈련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422(신해/ 61)

 

맑다. 새벽에 정찰도 하고 부정사실도 조사하기 위해 군관을 보냈다. 배응록(裵應祿)은 절갑도<折甲島, 절이도(折爾島) 해전(海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 현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로 가고, 송일성(宋日成)은 금오도(金鰲島, 여수시 남면)로 갔다.

 

또 이경복(李景福)과 송한련(宋漢連), 김인문(金仁問) 등에게 두산도(斗山島, 여수시 돌산도)의 적대목(敵臺木)을 실어 내리는 일로 각각 군인 50명씩 데리고 가게 하고, 나머지 군인들은 품방(品防)에서 공사케 했다.

 

) 경상도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니 충무공은 더욱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423일부터 430일까지의 일기는 빠져있다.

 

51(경오/ 610)

 

수군(水軍) 지휘관들이 일제히 앞바다에 모였다. 날은 흐리고 비는 오지 않고 마파람만 세게 불었다. 진해루(鎭海樓)에 앉아서 방답 첨사 무의공 이순신(李純信), 홍양 현감 배흥립, 녹도 만호 정운 등을 불러들이니, 모두가 분개(憤慨)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로운 선비들의 모습이다.

 

52(신미/ 611)

 

맑다. 삼도(三道)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 1538~1601)과 영남 우수사 원균의 공문이 왔다.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 남해(南海) 현령(縣令) 기효근(奇孝謹, 1542~1597), 미조항(彌助項, 남해군 미조면) 첨사(僉使) 김승룡(金承龍), 상주포(尙州浦)와 곡포(曲浦), 평산포(平山浦)의 만호(萬戶) 등이 하나같이 왜적의 소식에 놀라 달아나 버렸고, 군기물(軍器物) 등도 흩어 없어져 남은 게 없다고 말했다.

 

가히 경악(驚愕)스럽고 놀라운 일이다. 정오(午時)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있는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모두가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이 있으나, 낙안(樂安) 군수(郡守) 신호(申浩, 1539~1597)만은 피하려는 뜻이 있는 듯하니 탄식이 절로 난다.

 

그러나 군법이 있느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일인가? 저녁에 방탑의 첩입선(疊入船) 3척이 돌아와 앞바다에 정박했다. 비변사(備邊司)에서 공문 3(三丈)을 도착했다. 창평(昌平) 현령(縣令)이 부임했다는 공문이 있었다. 저녁에 군호(軍號)를 용호(龍虎)라 하고, 복병(伏兵)을 산수(山水)라 했다.

 

) 첩입선(疊入船)은 여러 진영을 오가며 연락을 취하는 배. 3(三丈)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3 정승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블로그 적연)에서 인용함. 군호(軍號)와 복병(伏兵)은 암구호를 뜻하는 듯하다. -57)-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