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55

웅석봉1 2024. 7. 1. 14:08

 

41(경인/ 511)

 

흐리다. 새벽에 망궐례(望闕禮)를 행했다. 공무를 보고 활 15 ()을 쏘았다. 별조방(別助防)을 점검하였다.

) 망궐례(望闕禮)는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근무하여 직접 왕을 배알 할 수 없는 관리들(관찰사. 목사. 부사 등)이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또는 왕과 왕비의 생일이나 설, 단오, 한식, 추석, 동지 등의 명절에 왕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비는 의식.

 

42(신묘/512)

 

맑다. 식후에 몸이 매우 불편하여 점점 통증이 위중해져 온종일 신음(呻吟)했다.

) 이순신은 4월 들어서 연 삼일을 통증에 시달렸다.

 

45(갑오/ 515)

 

맑다. 저녁나절에 비가 조금 내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46(을미/ 516)

 

맑다. 진해루(鎭海樓)로 나가 공무를 본 뒤에 군관을 시켜 활을 쏘게 했다. 아우 여필(汝弼)을 배웅했다. ) 진해루(鎭海樓)는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 입구에 있던 정자로 좌수영 남문 정문임. 옆에 활터가 있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됨.

 

47(병신/ 517)

 

나라 제삿날(중종비 문정왕후 윤 씨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사시(巳時)에 비변사(備邊司)에서 비밀 공문이 도착했다.

 

영남 관찰사(김 수)와 우 병마사(김성일)의 계문(啓聞)에 따른 공문이었다.

 

) 사시는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비변사(備邊司)는 임시 군사 기구였다가 삼포왜란 이후 정식 기구가 되어 점차 권한이 늘어나 최고 의결기관이 되었다, 계문(啓聞)은 신하가 임금께 올리는 글, 비밀 공문 내용은?

 

48(정유/ 518)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께 보낼 물건을 봉해놓았더니 저녁나절에 여필(汝弼)이 가지고 떠나갔다. 객창(客窓)에 홀로 앉아 있느니 온갖(萬端) 회포가 떠오른다.

 

) 객창은 나그네가 거처하는 방, 만단(萬端)은 온갖 여러 가지.

 

49(무술/ 519)

 

아침에 흐리더니 저녁나절에 개었다. 동헌(東軒)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방응원(方應元)이 입대에 관한 일로 공문을 작성해 보냈다.

 

군관들이 활을 쏘았다. 광양 현감(魚泳潭)이 수색하는 일로 배를 타고 와서 날이 저물어 돌아갔다.

 

411(경자/ 521)

 

아침에 흐리더니 저녁나절에 개었다. 공무를 본 뒤 활을 쏘았다. 순찰사(이광)의 편지와 별도로 기록한 문서를 순찰사의 군관 남한(南僩)이 가져왔다. 비로소 거북선에 쓸 돛을 베로 만들어 달았다.

 

412(신축/ 522)

 

맑다.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에서 지자(地字)와 현자(玄字), 총통(銃筒)의 포를 쏘아 마지막 실전 연습을 성공리에 마쳤다. 드디어 거북선의 건조가 성공했다. 어제 온 순찰사의 군관(南公)도 살펴보고 돌아갔다.

 

정오(正午)에 자리를 옮겨 동헌에서 활 10 순을 쏘았다. 좌수영(左水營)으로 올라갈 때 노대석(路臺石)을 보았다.

 

) 지자총통(地字銃筒)은 거북선의 주포이고, 현자총통(玄字銃筒)은 임진왜란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화포, 노대석(路臺石)은 말을 타고 내릴 때 디디던 큰 돌로, 관청이나 사가 대문 앞에 둔 돌. -55)-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