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42

웅석봉1 2024. 6. 3. 13:05

기세가 오른 일본의 함대들이 이번에는 진린의 판옥선을 향해 돌진했다. 일본 함대는 어느새 그의 판옥선을 포위하여 갈고리와 사다리를 걸고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때 이순신의 기함에서 함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간발의 순간에 진린은 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000여 척의 세 나라 함대가 좁은 노량 바다에서 뒤엉킨 채 백병전이 벌어졌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기존의 해전과는 다른 전술로 대응했다. 기존의 해전에서 이순신은 철저한 아웃복싱으로, 지형을 이용한 장거리 함포 사격을 퍼부어 적을 제압했는데,

 

이번 노량해전에서는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적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조선군의 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일본군도 그것을 느꼈으며 그래서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도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그러니 생사를 건 처절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 나라의 전투선들은 서로 근접 사격을 하고 있었다. 우리 판옥선에서는 일본의 전함을 향해 신기전(神機箭, 로켓 추진식 화살)과 조란탄(鳥卵彈, 돌을 깎아 새알처럼 만든 석환, 石丸)을 쏘아대었고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포탄의 일종)를 집어던졌다.

 

일본군은 조총을 쏘며 접근하면서 함선끼리 서로 가까워지는 틈을 노려 칼을 꼬나쥐고 판옥선에 뛰어오르려 하였다. 판옥선에 기어오르려는 일본군을 향해 조선의 사수들은 죽을힘을 다해 승자총통(勝字銃筒, 왜군의 조총에 대응하는 개인 화기)을 쏘거나 장병겸(長柄鎌, 전함에 오르려는 적을 걸어 베는 긴 낫)으로 내려찍었다.

 

그러다 보니 판옥선에 올라타지도 못하고 바다에 빠지는 일본군들이 부지기수였다. 바다에 빠진 일본군은 살기 위해 헤엄을 쳤지만, 격군들의 노가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어서 여러 종류의 함포 소리와 조총 소리, 칼 소리와 활시위 소리 그리고 삼국의 급박한 언어와 비명들이 난무하여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판옥선 밑바닥의 격군들에게도 이런 전투는 난생처음이었다. 함선끼리 무차별적인 충돌을 하게 되면서 젓던 노가 부러지고 그 충격에 이리저리 부딪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공포와 결렬함에 몸부림치면서도 격군들은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군의 전함들은 1척씩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조선의 수군은 이를 악물고 싸워서라도 일본군을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고 싶었고, 반면 일본군은 불문곡직하고 이곳을 빠져나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니 자연 일본군은 수세에 몰렸다. 도망가는 자가 수세에 몰린 것은 당연하였다.

 

서쪽에서 함께 협공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고니시의 함대는 보이지도 않았고, 일본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남해를 돌아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새벽 2시에 시작된 전투가 새벽 5시가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전장인 노량 앞바다를 간신히 벗어난 일본의 전함들은 남해도를 돌아서 나간다고 생각하고 전속력으로 배를 몰았다. 그러나 일본군이 다다른 곳은 남해도 깊숙이 위치한 관음포였다. 42)-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