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33

웅석봉1 2024. 5. 16. 08:45

916일 새벽, 300여 척의 일본 함대가 명량으로 들어섰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이순신과 13척의 판옥선은 서둘러 울돌목 앞으로 나아갔다. 이순신의 수중에는 고작 판옥선 13척뿐이라는 소식에 일본군들은 몸이 달아올랐다. 이 기회에 이순신을 잡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일본 수군의 선봉장은 해군 집안 출신인 구루시마 미치후사(1561~1597)였다. 형인 구루시마 미키유키는 당포해전에서 이순신에 의해 죽었다. 구루시마는 이순신을 죽여 공을 세움과 동시에 자기 형에 대한 복수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구루시마는 자신의 직할 함대 133척을 앞세우며 거리낌도 없이 명량으로 들어섰다.

 

이순신은 13척의 판옥선을 울돌목이 끝나는 지점에 일자진을 쳤다. 육지인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은 300m 남짓에 불과한 해협이었다. 울돌목이 좁았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긴 해협이었으면 불가했을 것이다.

 

적군은 명량의 거친 물살을 뚫고 이순신 함대에 접근했다. 이순신의 함대도 울돌목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전라 우수사 김억추의 판옥선은 오히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많은 일본군 함대를 보자, 겁을 먹은 김억추가 격군들의 노질을 중단시킨 것이다.

 

이순신은 동요하지 않고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일자진을 유지한 채 진격하라!” 대장선인 기함에서 진격의 깃발이 높이 올랐다. 이순신의 기함은 전속력으로 명량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대장선을 제외한 나머지 판옥선들은 더 이상 앞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명량의 거센 물살도 무섭지만, 그 물살을 헤치고 다가오는 일본의 대규모 함대에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12척 판옥선 함장들은 서로 간에 공포감만을 확인할 뿐, 대장선의 진격 신호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기함에서는, 부관을 비롯한 장병들이 겁에 질린 채 대장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살아서 훗날을 도모하자는 애원의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차가웠고 단호하게 그들의 눈빛을 외면했다. 대신 그는 거센 물살의 명량을 향해 돌격 명령을 단호히 내렸다. 이 명령에 장병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장선만으로 어떻게 저 많은 일본 함대와 싸우겠다는 말인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입술만을 앙다물 뿐이었다. 군기를 흐트러뜨리는 행동을 이순신이 용서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판 아래의 상황은 달랐다. 명령이 하달되자 격군들은 울부짖었고,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다들 도망간 마당에 우리만 싸우자는 것인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세상은 한…… 세상인디, 장군께서 가자하면 가야제” “아들아, 아버지 제사는 울돌목에서 지내주거라

1597916일 그 새벽에, 밀려드는 공포감을 분연히 떨쳐내고 울돌목을 향해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던 이순신 대장선의 격군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울돌목에 들어선 133척의 구루시마 함대는 조선군을 바라보며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판옥선이라고 해봐야 10여 척이 조금 넘어 보였고, 그 뒤에는 고깃배 수준인 포작선 몇 척이 보일 뿐이었다. 구루시마는 공격하면서 정말 저게 다 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조선군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어이가 없었다. 10여 척의 판옥선은 울돌목 입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고, 대장선으로 보이는 배만 울돌목의 역류를 헤치며 자신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구루시마는 좁은 울돌목을 계산하여 20여 척으로, 조로 나누어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133의 전설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순신은 달려드는 적의 선두 함선을 향해 함포 발사를 명령했다. 선두의 왜선 몇 척이 우리 함포에 맞았다. 함포에 맞은 적선들은 부서져 가라앉았고, 이어 새로운 왜선들이 밀려들었다. 이어서 함포를 뚫고 적선 몇 척이 판옥선을 향해 돌진해 왔다.

 

어느새 이순신의 기함에 적선 1척이 갖다 붙였다. 그러고는 판옥선에 올라타기 위하여 갈고리를 던지고 사다리를 올려 걸었다. 그러고는 대장선의 갑판을 점령하려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병사들을 보고 이순신은 소리쳤다. “동요하지 말라! 적선이 아무리 많더라도 우리 배에 올라타지 못한다.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되 절대 동요하지 말라!” -33)-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