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22
어영담은 경상도에서도 사천 현감을 지내서 경상도와 전라도의 바닷길을 손바닥 보듯,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의 함대는 포구 바깥쪽에서 학익진을 펼치면서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싸울 기력도 의지도 없던 일본군은 배를 버린 채 육지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어영담은 너무도 쉽게 일본 함대 30여 척을 불태우고 격침하였다. 조선 수군의 위용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쾌거였다. 하하하
2차 당항포해전(18승, 1594년 3월 4일~ 3월 5일, 일본군 피해→전함 31척 전파, 4,100여 명 사망. 아군 피해→없음)
그러나 바로 그때, 명나라 쪽에서 다음과 같은 통지문이 날아왔다. -일본과 명나라는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협약을 맺었으니, 조선군도 일본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그날이 1594년 3월 6일 아침이었다. 이순신은 국력이 약한 나라의 장수로서 서러움을 진하게 맛보았음은 불문가지였다.
이순신과 조선함대가 당항포에서 승리하고 다시 견내량을 내려와서 한산도로 돌아왔다. 이순신이 활약했던 임진년 1년 동안, 왜선 수백 척을 격파했고, 일만 명 이상의 왜군을 물귀신으로 만드는 과정에 조선군의 사망자는 단 39명이었고 부상자도 160여 명에 불과했다.
1594년 3월 초부터 조선 반도를 덮친 것은 전염병이었다. 특히 수군은 육군보다도 전염병에 약했다. 좁은 함선에 갇혀 생활하니 집단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도 전염병에 걸려 한 달 이상을 고생하였다. 이 병이 오늘날엔 어떤 전염병인지는 확실치 않다.
2차 당항포해전의 영웅 어영담도 이 전염병을 피하지 못하고 전장이 아닌 병석에서 아까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장졸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이순신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의 10분의 1인 600여 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전우이자 부하들이 전염병으로 허무하게 숨져갈 때 이순신의 심장은 어떠했을까? 흑흑흑
전쟁은 소강상태지만 세월은 흘러 1594년 9월 24일이 되었다. 이순신에게 거제도의 장문포를 공격하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추수철을 맞아 한산도에 있는 대다수의 수군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직후였다. 이때 새로 부임한 도체찰사 윤두수(1533~1601)가 일본 왜성을 공격(攻擊)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선조께 올려 이 건의가 받아들여진 상태였다.
이순신은 난감하였다. 그러나 조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처지라 우선 예비 병력으로 급히 진영을 꾸려 한산도를 출항하였다. 그러다 보니 경험이 부족한 육군과 의병들이 고향에 내려간 격군을 대신하여 노를 저었지만, 함대는 당연히 제대로 대형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장문포(거제섬의 위쪽) 해전에 참여하였다.
이 해전에는 전시 특별 장관인 도체찰사 윤두수와 합참 의장 격인 도원수 권율(1537~1599), 그리고 해군 참모총장 격인 이순신이 참여하였다. 가히 조선 최대의 수륙 병행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실질적인 총사령관은 이순신이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류성룡이 계속해서 장문포 왜성 공격의 불가함을 읍소하였다. 이에 선조는 전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다시 내렸다. 갈팡질팡하는 선조의 참으로 한심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전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장문포와는 지척인, 건너편 작은 섬인 칠천도의 외줄 포에 조선 진영이 꾸려졌다.
1594년 10월 1일, 장문포 왜성의 1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적들은 숨어서 나오지를 않았다. 육지의 곽재우(1552~1617, 경남 의령 출신. 전국 최초의 의병장. 홍의장군이란 별칭처럼 항상 붉은 철릭을 입었음)와 김덕령(1567~1596,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문초 중에 사망)이 가세했으나 실패함.
결국 선조의 전투 중단 지시에 따라 이순신은 장문포 공격을 중단하고 한산도 본영으로 돌아왔다. 장문포 해전은 실패한 작전이었다. 당시 총지휘관인 도체찰사 윤두수는 전장은커녕 순천에 머물렀고, 도원수 권율도 역시 전장과는 먼 곳인 구례에 주둔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 수군은 장문포 해전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고, 2척의 일본 함선을 침몰(沈沒)시켰음에도, 역사는 이 전쟁을 무승부로 기록하였다. 장문포 해전(1무, 1594년 10.1, 일본군 전함 2척 침몰, 190여 명 사망. 조선 육군 사상자 다수) -22)-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