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19

웅석봉1 2024. 4. 28. 14:41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19733,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마침 오늘이 479주년이라 서울 종로구 <충무공 이야기 전시관>에는 아침부터 참배객으로 만원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승리를 거둔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은 아끼는 부하 장수 정운(1543~1592)을 잃었다. 일본 저격병들이 쏜 대조총(일본이 만든 큰 조총)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진 듯 슬픔에 잠겨 장례를 치른 이순신은 그를 떠나보내며 절절한 마음을 추모 제문에 담았다. 여기 소개한다.

 

어허, 인생이란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고 삶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나니/ 사람으로서 한 번 죽는 것은 진실로 아까울 게 없건마는/ 오직 그대 죽음에 마음 아픈 까닭은/ 나라가 불행하여 섬 오랑캐가 쳐들어와/ 영남의 여러 성이 바람 앞에 무너지자/ 몰아치는 그들 앞에 어디나 거침없이/ 우리 서울 하룻저녁 적의 소굴 이루도다./

 

천 리 관서로 님의 수레 옮기시고/ 북쪽 하늘 바라보면 간담이 찢기건만/ 슬프다 둔한 재주 적을 칠 길 없을 적에/ 그대 함께 의논하자 해를 보듯 밝았도다./ 계획을 세우고서 배를 이어 나갈 적에/ 죽음을 무릅쓰고 앞장서 나가더니/ 왜적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피 흘리며/ 검은 연기 근심 구름 동쪽 하늘을 덮었도다./

 

4번이나 이긴 싸움 그 누구 공로인고/ 종사를 회복함도 기약만 하옵더니/ 어찌 뜻했으랴 하늘이 돕지 않아 적탄에 맞을 줄을/ 저 푸른 하늘이여 알지 못할 일이로다/ 돌아올 제 다시 싸워 원수 갚자, 맹세터니/ 날은 어둡고 바람조차 고르잖아, 소원을 못 이루매/ 평생에 통분함이 이 위에 더할쏘냐./

 

여기까지 쓰고 나도 살을 에듯 아프구나/ 믿는 이 그대인데 이제는 어이할꼬./ 진중의 모든 장수 원통히도 여기거니와/ 그 재주 다 못 펴고 덕은 높되 지위 낮고/ 나라는 불행하고 군사 백성 복이 없고/ 그대 같은 충의야말로 고금에 드물거니/

 

나라 위해 던진 그 몸 죽어도 살았도다./ 슬프다 이 세상에 누가 내 속 알아주리./ 극진한 정성으로 한잔 술을 바치노라./ 어허, 슬프도다! 흑흑흑

 

15924월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5, 1차 출정을 나선 이순신은 옥포와 합포, 그리고 적진포에서 승리했다. 그해 5~62차 출정 때는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에서 연전연승했고, 73차 출정에서는 한산도에서 승리하면서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동시에 안골포에서도 승리했으며 9월 초, 4차 출정에서 적의 본산인 부산포까지 완전히 쓸어버렸다.

 

임진년에 조선 땅에서 벌어진 양국 간의 전투에서 육전은 일본군이, 해전은 조선군이 압승하는 상황이었다. 15929월 부산포해전에서 대패한 이후 일본은 다시 한번 육지를 통해 호남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부산포해전 한 달 후인 159210, 일본군은 호남으로 넘어갈 수 있는 관문이었던 진주성을 공격했으나, 성주 김시민(金時敏, 1554~1592)과 진주성 백성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성은 지켜졌고 일본군은 육지로의 호남 진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시민은 전사하였지만, 그의 위명은 일본에까지 남아 모쿠소라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목사(牧使)’모쿠소라 발음한다.

 

부산포해전과 진주성대첩 이후 전쟁은 소강상태로 빠져들었다. 해상 보급이 불가해지자 육지의 일본군은 더 이상 사나운 침략군이 아니었다. 이순신이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일본 수군은 서해를 돌아서 한강을 타고 한양으로, 예성강을 타고 개성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압록강을 타고 명나라로 도망가는 선조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임진년 9월에 치러진 부산포해전 이후 전라좌수영의 수군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추수기 수확에 힘써야 했다. 전쟁으로 전 국토가 유린당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남의 쌀을 수확하는 것은 전투의 승리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찾아오면서 처참했던 임진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159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기 무섭게 함경도에서 정문부(鄭文孚, 1565~1624, 전주 부윤, 副摠管)가 일본군 2선발이었던 가토 기요마사(1562~1611)를 몰아내고 함경도를 온전히 수복하였다. 이어 명나라 군대가 조선에 참전하였다. 이여송이 5만의 명군이 도착하여 류성룡과 조명연합군을 편성하였다. -19)-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