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중일기> 15

웅석봉1 2024. 4. 23. 17:38

 

일본 수군 역시 조선함대 60여 척이 견내량 너머에서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반응을 보였다. 성격이 급한 와키자카가 후방 사령관 구키 요시타카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자신의 함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키자카의 일본 함대 70여 척이 견내량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견내량은 좁은 데다 암초가 많은 지형이었다. 크고 육중한 판옥선이 이동하면서 진을 치고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은 바다였다. 일본 수군이 돌진해 오는 것을 보며 이순신이 고심하는 사이 원균이 큰소리를 쳤다.

 

무엇을 지체하는 거요? 우리도 돌진합시다!” 그러나 이순신은 무조건 돌진보다는 유인 작전을 전개할 생각이었다. 일본군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해서 수장시키고 싶었다. 이유는 패한 적이 육지로 도망쳐서 우리 백성을 괴롭힐 것을 막자는 뜻이었다.

 

견내량을 빠져나오게 하여 넓은 바다로 끌어들인 후 전부 다 수장시켜 버리리라. 혹여나 너희들이 헤엄쳐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무인도인 화도나 한산도로 도망가도록 하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모두 굶어 죽도록 하리라이순신의 독백이었다. 이런 이순신의 애민(愛民) 사상을 원균이 헤아릴 수 없었다.

 

와키자카의 일본 선발대가 무섭게 견내량에서 내달리고 있을 때 이순신의 지시에 따라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함대는 통영만 쪽으로 가서 매복했다. 원균의 경상우수영의 7척의 함대는 화도 쪽에 매복했다. 선봉은 당연히 전라좌수영의 이순신이 맡았다.

 

이순신은 광양 현감 어영담(魚泳潭, 1532~1594)에게 명령했다. “5척의 판옥선을 끌고 가서 와키자카 함대를 유인해 주시오” 5척의 판옥선을 쫓아오던 와키자카의 눈에도 저 멀리 바다에 상당수의 조선함대가 대기 중 임을 알았다. 그러나 와키자카는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바다에서 징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서 후퇴하던 5척의 판옥선이 속도를 줄였고 멀리 떨어져 있던 조선함대들이 일시에 속도를 내며 5척의 판옥선을 품어 안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징이 울리니 놀랍도록 우아한 학익진이 펼쳐졌다.

 

그리고 학익진에서 2척의 전투선이 튀어나왔다. 거북선이었다. 장사진을 펴며 일렬로 전진하던 일본의 주력 함대인 세키부네는 거북선과 부딪히며 그대로 바다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백조가 우아함을 뽐내지만 못난 발은 물 밑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처럼, 거북선의 활약도 백조처럼 우아하게 물 위에서 일본 함대를 서서히 함몰시켰다. 하하하.

 

이순신은 한산도에 갇힌 왜군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산도를 에워싸고 지키라고 원균의 함대에 부탁했다. 그러나 원균은 이 작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원균은 다른 쪽에서 일본 함대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이 포위망을 풀어버렸다. 이 틈을 노려 와키자카는 탈출에 성공하여, 결국 살아서 도망치고 말았다. 후일 일본으로 도망친 와키자카는 이순신으로부터 겸손을 배워 상당 기간 지배층으로 활약했다고 전한다.

 

패전 소식을 접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절망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지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을 만날 것은 처음이었다. “조선 수군을 우리가 이길 수 없구나. 교전을 금하라한산도대첩 이후 일본군들에게 이순신은 염라대왕이었고, 거북선과 판옥선은 저승사자고, 조선의 바다는 지옥이었다.

 

당시 전황은 일본의 선봉장 고니시(1558~1600)가 평양까지 점령한 상태로 의주까지 몽진한 선조로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는 조선의 임금 선조를 조롱했다. “서해로 우리 일본군 10만 병력이 올라올 터인데, 이제 왕께서는 어디로 도망을 가시렵니까?”

 

그러나 한산도의 패전으로 일본의 수륙병진 작전은 좌절되었고, 10만 병력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올라오지 못했다. 증원병과 군량미, 무기 등 보급이 완벽하게 차단된 고니시는 평양에서 발이 묶이며 의주를 공격할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결과적으로 한산도대첩은 이순신이 조선의 임금(선조)을 구한 전투였고 제해권을 완전히 조선이 장악한 전투였으며, 육지로 북상해 있던 일본군이 장기간 굶주리며 춥고 불안에 떨게 한 통쾌한 전투였다. 하하하

 

한산도대첩(8, 159278. 일본군 피해와키자카 사헤에 사망. 마사베 사마노조 할복. 전함 47척 침몰, 12척 나포. 9,000여 명 사망. 아군 피해3명 전사. 10여 명 부상) -15)-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