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살리라> 11
“그래서 말인데, 신청액이 500억이라 내치기는 너무 아깝거든. 업적평가에도 큰 도움이 될 거고……, 어차피 이 건은 본점의 승인을 받아야 하니까. 신용으로 처리하되 첨 담보 조로 그 임야를 잡는 방법은 어떨까.”
“글쎄요. 신용대출 요건이 되는지 한번 다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날 밤 지영이는 꼬박 밤을 새웠다. <소로즈건설>의 재무제표와 공시자료 그리고 사업계획서와 자금 운용 계획서. 현금 흐름표 등을 세세히 검토하였다.
<소로즈건설>은 현 지점장이 금 년 초에 이 지점으로 부임한 이후부터 거래를 시작한 회사다. 그러니까 지점장이 가지고 다니는 거래 업체인 셈이다. 그런데 지점장은 본점 핑계를 대면서 대출을 재촉하니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지영이를 괴롭혔다.
검토 결과는 부적합이었다. 애당초, 담보 대출용으로 신청 서류를 만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지점장의 지시로 다음 날 오후에 대출 심사 협의회를 정식으로 열었다. 대출 심사 협의회는 10억 원 이상 담보대출의 경우에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 거치는 절차다.
심사위원장은 지점장이고 위원으로는 부지점장. 팀장 3명과 여신 심사역인 지영. 모두 6명이다. 전원 모였다. 지영이가 대출 신청 경위와 서류 검토 의견을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설명이 끝나자, 지점장이 위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부(副)지점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은 시기입니다. 특히, 부동산은 호황이지요. 앞으로 이런 현상은 당분간 지속되리라 봅니다. 이런 때에는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여신을 늘리는 것이 은행 경영의 정도라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이 건이 검토되었으면 합니다”
부지점장은 지점장의 면 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지점장으로부터 무슨 언질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제와는 다른 의견을 말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지점의 업적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업체는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서류 검토서를 보니 신용평점이 다소 부족한데 더 올릴 방안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수신팀장이 눈을 굴리면서 지영이를 응시한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재무적 평가는 객관적이라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을 것 같고. 비재무적 평가는 다소 여유가 있다면 있을 수 있는 부분이지요”
토론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지영이를 제외한 다른 위원들은 이 여신이 성사되어 지점의 업적이 올랐으면 하는 심정들이었다. 그러나 지영이와 담당 직원의 반대는 확고했다.
토론 끝에 지점장은 신용대출과 담보대출로 구분하여 부의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토론 결과는
1) 담보로 제공한 임야를 첨 담보하는 조건으로 100억 원을 신용대출로 취급하고
2) 나머지 400억은 담보물을 추가로 받아 재검토하기로 하였다. 결국 500억을 신청한 건을 100억만 대출 해 주겠다는 것이다. 소위 심사 역(役)인 지영이의 안이 일부 반영된 절충안이었다.
다음 날 <소로즈건설>에 이와 같은 사실을 통보하니 담당 부장이 화를 더럭 같이 냈다. 지금 누구 회사 망칠 일이 있냐면서, 당장 서류를 돌려 달라고 하였다. 다른 은행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회사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보다.
담보물 가치가 부족하다는 말에 그는 그렇지 않다면서, 그 땅이 얼마짜리인지 아느냐는 것이다. 1,000억을 준다 해도 안 판다는 알짜배기 땅이란다. 지영이는 가슴이 답답하다. ‘누구를 바보로 아는 모양이군’ 이쯤 해서 상담을 끝내야 한다.
“그럼,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서류를 반환해 드리겠습니다. 귀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빌겠습니다”
그는 또박또박한 어조로 내뱉었다. 전화를 끊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 낮에 지점장이 한 날 선 충고를 안주로 씹어 삼키면서 그날 밤 담당 직원과 씁쓸하지만 후련하게 소주를 마셨다.
“김지영 씨! 당신은 추진형이 아니야. 일선 영업점에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야. 고객을 그렇게 내치는 행원이 어디 있나.” 지점장도 마음이 많이 상했나 보다. -계속-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