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살리라> 9
제주 에코랜드에서 마술을 구경하는 여행객들
5. 청산골
영수는 어제 병아리 오백삼십 수를 양계장에 들였다. 원산지가 이탈리아인 난용(卵用) 레그혼(Leghorn)이다. 암탉 오백에 수탉 삼십의 아장거리는 모습이 노란 꽃이다. 네다섯 달만 키우면 하루에 오백 개의 알을 선물할 것이다.
달걀 한 알에 도매로 백 원씩이라도 하루에 5만 원이다. 그만하면 생활비는 된다. 그는 닭장 짓던 지난 석 달간의 고생이, 고생이 아니라 행복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석 달 전, 산에 눈이 녹을 즈음 그는 과수원 초입의 사과나무 열 그루를 베고 그 자리에 터를 닦았다. 바닥을 고르고 자갈을 깔았다. 자갈은 사과나무를 심을 때 모아 둔 것이다. 배수가 잘되게 바닥을 다졌다. 그리고 황토 벽돌을 찍었다.
황토는 과수원 부근에서 파왔다. 황토 벽돌을 만들려면 짚이 필요하다. 짚은 마을 이장님께 부탁하여 구했다. 황토에 짚을 섞어서 물을 붓고, 벽돌 틀에 찍어 햇볕에 며칠을 말려야 한다. 다음에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벽돌을 쌓아 갔다.
그리고 강변의 갈대를 엮어 지붕을 이었다. 거의 모든 재료는 그가 직접 들이나 산에서 마련했다. 기둥과 서까래, 창틀과 출입문도 만들었다. 통풍이 잘되게 창문도 크게 설치했다. 다만 돈을 주고 산 것은 벽돌 찍는 나무틀과 비닐과 못 두 통이 전부다.
석 달 동안에 제법 그럴듯한 황토집이 지어졌다. 처음에는 비닐하우스로 지을까도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비닐은 습도가 높아 가축을 키우기에는 부적당하다고 생각되어 좀 힘들지만 황토로 짓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어 놓고 보니 참 잘했다는 기분이다. 남들이 보면 얘들 장난 같을지 모르지만, 그가 보기에는 대궐은 아니어도 오두막집은 됨직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양계장 일로 제대로 손보지 못한 과수원 일에 매달려 있었다. 해 질 무렵 마을로 내려오니 뜻밖에 경우네 마당에 포니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경우가 서성거리고 있다.
“야, 이 경우! 우 짠 일이고. 주말도 아닌데.”
“아, 영수야 반갑다. 그래 그동안 잘 있었나.”
그날 밤 둘은 영수의 방에서 새우깡에 소주를 마셨다. 경우의 얼굴이 좀 부스스하다. 각 한 병씩을 까고 나니, 경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은행……~그만, 뒀어.”
“뭐 뭐라고? 너 제정신이냐? 은행을 그만두다니.”
영수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져 나왔고, 동시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경우는 은행이란 곳이 겉으로는 번지르르할지 모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꽁생원도 그런 꽁생원이 없고, 그런 꽁생원들의 놀이터이니 발전성이나 창의성이란 눈곱만큼도 없고, 기생도 그런 기생이 없고,
그런가 하면 근무 시간에는 칼날 같은 곳이라, 여차하면 제 명대로 살 수도 없는 곳이라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돈을 주무르는 곳이라 항상 돈의 유혹과 돈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러면서 어떤 회사든지 은행만큼 노력하면 제 밥벌이 못 하겠냐고 장담까지 하였다. -계속-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