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청산에 살리라> 5

웅석봉1 2024. 3. 12. 09:44

3. 청산골

 

해가 바뀌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았다. 봄이 왔는데도 과수원은 눈으로 덮여 있다. 오늘도 진눈깨비로 하늘이 뿌옇다. 영수는 간식용으로 남겨 둔 홍옥 한 개를 꺼내어 흐르는 수도꼭지에 씻었다. 색깔이 루비다.

 

코끝으로 들어오는 보석의 향은 입안에 군침으로 남는다. 루비 한 입을 깨물었다. 아삭아삭하고 향긋한 맛이 온 입 안은 물론 방 안까지 가득하다.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금년도 영농계획서를 꼼꼼히 검토 중이다.

 

드디어 예금 통장에는 비록 저단위이지만, 8단위의 숫자가 들어 있다. 이 돈으로 무언가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한다. 처음에는 양돈이나 한우도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투자 금액이 많고 분뇨처리가 문제였다. 고심 끝에 양계장을 지어 닭을 키우기로 결심하였다.

 

농촌에서는 가축을 키우려 해도 분뇨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똥오줌은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킨다. 소나 돼지는 이에 대한 시설투자도 만만치 않다. 웬만하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들어간다.

 

그에 비하면 닭은 비교적 수월하다. 닭똥은 수분이 없다. 약간 삭혀서 과수원에 묻으면 좋은 거름이 되는 것이다. 특히 유실수에는 최고의 비료다.

 

그래서 해동하면 양계장을 한 서른 평 정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다. 너무 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먹이는 과목(果木) 사이사이로 보리나 밀을 심고, 풀을 뜯어서 자가(自家) 조달할 계획이다. 그래야 유기농이다.

 

풀과 보리나 밀을 먹인 닭이 사료 먹인 고기보다 훨씬 고급육이 될 것이고 이들이 낳은 알도 역시 최고급품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육계로 갈까? 산란계를 키울까? 고심 중이다. 육계는 목돈을 질 수 있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출하기가 집중되는데 잘 팔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육계로 갈까? 아니야 아무래도 위험성이 높아. 갑자기 조류독감(鳥類毒感)이라도 오면 도로 아미타불이야.

 

그렇다면 알을 낳는 놈으로 할까? 한 오 백수를 사육하면 하루에 오백 개의 알이 나올 건데, 어떻게 팔지? 서울 도매상에 넘기는 거야. 아니면 경우나 지영이가 사는 아파트에 직거래할 수도 있겠네.

 

그래, 좀 더 생각하자. 아니, 어머니 의견을 들어 볼까.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그러나 영수 어머니는 올해는 장가부터 가라시면서 계사 짓는 것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장가는 나 혼자 가나 하고 어머니 말을 건성으로 받아넘겼다.

 

천천히 가겠노라고,…… 그런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양계장 짓는 일을 밀어붙였다. 사실 그는 조합의 미스 노() 정도면 결혼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알아본 바로는 그녀도 그보다 몇 살 적기는 하지만, 여자 설 흔 가까우면 만만찮은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조합 지도과장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녀도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도 아직은 결혼할 의사 같은 것은 없다는 말씀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영수의 아랫도리가 뻣뻣해 온다. 물건을 깔고 누워 있어서인가, 결혼을 생각해서인가, 미스 노를 생각해서인가, 이유야 많지만 이를 따지지 말자.

 

이 정도 되면 그는 참지 않는다. 배설의 환희를 즐기고 싶은 것뿐이다. 수일 전에도 그러했듯이 젊음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는 배를 살짝 움직여서 두루마리 휴지에 손을 뻗쳐 대여섯 겹 벗겼다. 그리고 천장을 보고 천천히 바로 눕는다. 물건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는 휴지로 그놈을 조심스럽게 감싼다. 그리고 심호흡을 두세 번 한다. *다음은 눈을 천천히 감는다* -계속-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