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강변역에서> 5

웅석봉1 2024. 3. 2. 16:26

 

그리고 우리는 서로 잊고 있었지. 그런데 운명이 우연처럼 다가왔어. 내가 군에서 마지막 휴가를 얻어 용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에서 그녀가 다가와 내 앞에 우뚝 섰어.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쳐다만 보았지.

 

그녀가 말했어. “나 몰라, 나 문예반장!”

 

나는 그녀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 “~엠 쏘리. 충성!”

 

그날 그녀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선을 보려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길이었어. 그날 우리는 같이 고향으로 내려갔고 각자 고향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같이 고향을 떠나왔지.

 

그리고 서울에서 나의 남은 휴가를 그녀의 자치 방에서 보내고 나는 귀대했어. 갈 곳 없는 휴가길에 큰 사건이었어. 그리고 우리는 내가 제대하자마자 바로 결혼했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어. 결혼 1년 후 은선이를 보았고.

 

내가 당신과 떠나기로 결심한 그 며칠 전에 나는 은선이 엄마에게 당신에 대하여 고백하려고 했어. 그때 은선이 엄마는 조용히 그녀의 검지를 그녀의 입술에 붙이면서 고개를 저었어.

 

한참 후 은선이 엄마는 나직이 말했어. ‘당신이 말 안 해도 잘 안다고 하면서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 그날 밤 우리는 말없이 술잔만 부딪쳤어.

 

다음 날 일어나니 은선이 엄마는 먼저 출근하고 없었어. 평소에는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데 그날은 빨랐어. 대신 식탁 위에 하얀 봉투 하나가 있었어. 나에게 쓴 편지였어. 내가 이 편지를 당신에게 말해야 할지를 많이 생각했어.

 

처음에는 은선이 엄마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당신에게 공개하지 않으려 했어. 하지만 이 편지만큼 내 마음을 잘 나타낼 재주가 나에게는 없어서, 부득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해. 잘 읽어주고 은선이 엄마를 나무라지 말아줘.

 

사랑하는 은우 아빠!

 

당신, 너무 죄스러워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도 말아요. 지난 2.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나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어요.

 

때로는 당신의 그 잘난 얼굴을 후려쳐 주고도 싶었어요. 나이 사십이 넘어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경찰에 달려갈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미 나무에 박혀 있는 송곳을 내리쳐 봐야 그 송곳이 뽑히나요. 오히려 골 만 깊어질 뿐이지요.

 

그래서 나는 이럴 때일수록 한 사람이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 마음을 진정하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흔히 말하는 권태기의 불장난이겠지.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당신은 그게 아니었어요. -계속-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