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강변역에서> 4

웅석봉1 2024. 3. 1. 14:08

그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허공에 뜬 내 앞에, 어두운 유리창을 통하여 당신의 애절한 마지막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어. 무언가 말하고 있는 당신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어. 두 얼굴이었어. 아니 세 얼굴이더군. 본래의 당신 얼굴과 다른 두 얼굴,

 

그 하나는 천사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의 얼굴이었어. 처음에는 천사가 크게 보이다가 차츰 악마가 당신을 짓누르기 시작했어. 당신을 짓누르는 악마. 그것은 나를 짓누르는 악마였어.

 

그제야 나는 당신이 나에게 무얼 말하려는지 알 수 있었어. 우리가 만나서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내가 당신에게 한 말 ~라면 죄겠지그 말이 생각났어.

 

내가 우연처럼 한 그 말, 말이야. 순간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어느 봄날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나는 죽순처럼 내 심장을 뚫고 목구멍으로 울컥 기어 올라왔어. 그 죽순은 지금 큰 가시 대밭이 되어 당신과 나 사이에 가로 놓여있어. ~라면 죄겠지. ……,그 악마가 나를 떠나게 하는가.

 

내가 당신과 멀리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시 한번 자문해 보건대, 그것은 단지 사랑만은 아니었어. 내가 당신을 처음 보던 그때, 비를 맞고 서 있는 당신 앞으로 다가서면서 내가 한 말, ‘상습범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그 말, 지금 생각해도 적절한 표현이었어.

 

나로서는 예기치 못한 새로운 시도였고 욕망의 표출이었어. 그날 우리의 만남은 내 마음속의 욕망과 당신의 비에 젖은 실루엣이 만든 새로운 세계였어.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의 용트림이 표적을 찾았던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우리의 만남이 쌓여 갈수록 나의 날개도 더욱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어. 그것이 결국 나를 떠나가도록 하였어.

 

그것은 마치 나를 낳아준 여자의 심정처럼.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심정. 그것이었어. 그러나 나는 당신의 천사를 알지 못했었지. 그처럼 깊은 천사가 당신 가슴속에 박혀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당신을 믿어. 당신은 나를 이해하리라는 것을

 

사랑하는 당신이여.

 

이제 당신이 그토록 걱정하는 은선이와 은선이 엄마에 대하여 고백할 시간이 되었어. 은선이 엄마는 나의 중학교 선배야. 내가 1학년 때 그녀는 3학년이었어. 그땐 서로 잘은 몰랐었지. 그 후 내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고등학교에서 주관하는 시 낭송회가 있었어.

 

읍내의 중, 고등학교의 학생 대표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어. 그때 나는 우리 학교 대표로 참석하여 시를 낭송했지. 그 시가 바로 <강변역에서>란 시야. 그날 거기서 나는 그녀를 보았어.

 

그녀는 그 고등학교의 문예반 반장이었어. 바로 그날의 주체 주관자지. 낭송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음성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칭찬해 주었어.

 

당시 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어. 음성만 칭찬하고 내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고른 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평도 없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포근함을 느꼈어. 내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모성은 잘 모르지만 아마, 이것이 모성이 아닐까, 생각했어. 그날이 내가 그녀와 처음으로 대화한 날이었어. -계속-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