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역에서> 2
*이 글은 신경숙(申京淑, 1963~ )의 단편 소설집『풍금이 있던 자리』(문학과 지성사, 1995년)를 읽고 지은 소설입니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소설로서 주제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로, 아주 흔하디흔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문단과 매체와 독자로부터 거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한 편의 소설로 방송국 구성 작가로 일하며 오랫동안 무명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있던 신경숙을 그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려면 부득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어머니 이야기는 아직 한 번도 누구에게도 한 일이 없어. 그처럼 나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거야. 나를 낳아준 여자는 있었겠지만, 나를 길러준 어머니는 없었으니까.
내가 다섯 살인가 언젠가의 봄에 나를 낳아준 여자는 어느 떠돌이 양아치와 눈이 맞아 도시로 떠났다는 게 막내 삼촌의 설명이었어. 세월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해 봄 어느 따뜻한 정오쯤이었어.
내가 막 교문을 나서려는데 저쪽 문방구 담벼락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눈을, 소름 끼치도록 뜨겁게 느꼈던 기억이 있어. 분명히 남자와 여자였어.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여자는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는데 남자가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어.
그는 다짜고짜 나를 번쩍 들어 안았어. 내가 반항할 사이도 없이,……, 그 남자의 가슴에 안긴 나는 놀라서 크게 울고 말았지.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그 남자가 얼마나 억세게 안았던지 내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었어.
내가 큰 소리로 울어대니 그 남자도 놀랐는지 나를 내려놓았어. 그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
그때 나의 눈이 그 남자의 눈과 마주쳤어. 순간 나의 몸에 전율이 왔어. 어쩐지 어디에선가 예전에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어. 아니 그의 까만 눈동자가 내 것과 같다는 느낌이 내 작은 가슴을 스쳤어.
내가 정신을 차린 후 그들을 찾았으나 그들은 이미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어. 그 대신 내 앞에는 조그만 그림책 한 권과 예쁜 인형 하나가 놓여있었어.
한참의 세월이 또 흐른 후 나는 그때 그들이 나의 엄마와 그녀의 남자라는 사실을 느꼈어. 그땐 왜 그 남자가 나를 껴안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이후로 나는 그들을 더는 보지를 못했어.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릴 때 내가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슬픈 생각에 엄마가 밉다고 소리치면 아버지는 나를 업고 방안을 빙빙 돌면서 ‘엄마는 천사야.’ ‘엄마는 천사야’를 수도 없이 반복하셨어.
내가 철이 들어서 딱 한 번 아버지께 어머니의 행방을 물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는 도시로 돈 벌려갔다. 돈 많이 벌어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어. 그러니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하셨어. 아버지는 한 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어.
어쩌면 그의 핏줄이 아닐지도 모르는 나를, 아니 배신자요 원수의 아들일 것 같은 나를, 친자식으로 키운 그 사랑 아니 연민이……,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