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흔적> 13

웅석봉1 2024. 2. 21. 13:31

소문이 현실이 되어 그곳 일대는 서서히 먼지만 자욱한 쑥밭으로 변하고 있었다. 드디어 어버버가 사는 동네도 어제부터 철거가 시작되었다.

 

건설회사에서 큰 차를 대어 놓고 차례로 집들을 부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같이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거리를 달리는 강아지들도 힘이 빠졌는지 빌빌거린다.

 

귀신이라도 나오는지 밤이면 바람 소리도 거칠다. 어버버 모녀도 걱정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돈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갈 텐데 그럴 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반장을 찾아가 전세금을 돌려 달라고 해 보았으나 반장도 지금 돈이 없으니 좀 기다려 보라고만 했다. 이를 줄 알았으면 전세 계약할 때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특약이라도 해두어야 했는데 아쉽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니 어버버는 반장과 동생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최악에는 반장이 이사 가는 곳으로 따라갈 심산이었다. 안되면 그들과 같이 살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좋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발이라는 괴물을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착각에 불과했다.

 

다음 날 동트기 아주 이전에 조그만 트럭 한 대가 반장 집 앞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반장은 값나가는 재물만 챙겨 서울의 거대한 숲속으로 숨어 버렸다. 원래 반장 집은 하천부지에 무허가로 지은 집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결국 반장은 건물에 대해서는 다소나마 보상을 이미 받았고 열 가구의 세입자 전세금만 꿀꺽하고 야간도주를 하고 말았다. 당시는 이런 일이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죽어 나가는 것은 없이 사는 백성들이었다.

 

나라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는 처지였다. 시청 앞에서는 연일 개발 반대 데모대가 아우성(我愚聲)을 치고, 철거 현장에서도 주민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니 나란 들 사라져 버린 사람 찾을 여유가 있었겠는가.

 

하루속히 멋진 신도시를 만들어 집 없는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절박한 순간이니 더 말해 무엇 하리.

 

지금은 오로지 철거만이 있을 뿐이다. 그날 아침에 철거반이 어버버의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안내 방송을 두 번 하였다.

 

주민 여러분! 오늘 오후부터는 이곳은 확실히 철거됩니다. 그러니 오전 중에 주민 여러분들은 모두 짐을 챙겨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 철거할 때 집안에 남아 있는 물건은 우리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안내 방송입니다. 주민 여러분들의 협조를 부탁합니다.”

 

아다다의 가슴에서 철렁 소리가 났다. 그녀는 바로 반장네 집으로 뛰었다. 집은 문이 열린 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도망간 것은 아닐까.

 

아닐 거야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돈 때문에 우리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고, 아다다는 그래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마당을 걸어 나온다. 13)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