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흔적> 6

웅석봉1 2024. 2. 13. 08:55

여자의 배가 불러 오르기 시작하여 열 달을 못 채우고 아홉 달 반 만에 아이를 낳았다. 연꽃 같은 딸이었다. 이름을 해실이라 지었다.

 

아버지 해동의 자에 어머니 확실이의 자를 따왔다. 아이는 발육이 좀~느렸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다만 커 갈수록 아다다의 형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을 많이 더듬는 것이 수상하였다. 행동도 원활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린 해실이는 그들 부부의 노리개요 말동무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녀가 열 살이 될 무렵 무심한 세상은 한반도 금수강산에 난데없는 전쟁을 터뜨려 선량한 백성들의 행복을 빼앗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남쪽이 터져 내려갔다.

 

1· 4 후퇴 때인가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섬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인민군인가 중공군인가 미군인가 누가 그런 참혹한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 야간 경비를 나간 해동 일행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아다다는 해실이를 데리고 구사일생으로 섬을, 탈출하였다.

 

그녀는 딸만 아니었으면 남편을 따라 죽었을 것이다. 불쌍한 해실이를 버릴 수 없었던 아다다는 끼고 있던 금가락지를 선주에게 빼주고 쪽배에 몸을 실었다.

 

3.

 

뭍으로 올라온 모녀는 피난민을 따라, 주야 열흘을 남으로 남으로 걸어 경기도 광주산맥 기슭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그곳에 터를 잡고 옹기종기 살기 시작하였다.

 

그곳에 올라서니 가슴이 시원하다. 남한산성에서 남으로 영장산과 불곡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는 한 마리 청룡이 승천하는 형상이요 저 아래 산줄기 따라 길게 흐르는 탄천(炭川)은 아이의 탯줄처럼 고고(呱高)하다.

 

산성에 올라 살피니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다. 탄천 넘어 청계산 줄기는 서울의 관문이라 들고 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위치다.

 

장차 여기가 천당에 버금가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고 어느 도사가 예언했다고 전한다. 그런 이곳에 미리 터 잡아 살고 있으니 여기 사람들은 비록 없이 살아도 병 없이 산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모녀가 산기슭에서 초막을 짓고 살아 온 지도 어 년 이십 년이 지나갔다. 이십 년 동안 인근 야산에 화전을 일구어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고 살았다.

 

산골일수록 봄가을이 좋았다. 봄이면 영장산에 올라 곰치며 쑥이며 두릅을 따다가 끓여 먹었다. 가을이면 감이며 배며 머루며 다래를 주워 먹고 남으면 독에 담았다. 그것으로 배부르다. 쌀이 뭐가 필요하며 밥이 뭔지도 몰랐다. 6)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