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5

*갑진년 설날을 맞이하여 댁내 두루 평안하심을 앙망합니다. 신상조 올림.
돈이 들어오면 나갈 줄을 모르고 살았다. 불쌍한 엄마 버리지 못해 결혼도 포기하고 살았다. 그뿐이면 그래도 한은 없겠다.
병신이라고 오만 손가락질 다 받아 가며 하루도 그러지 않고 손톱이 터지면서 모은 돈이다. 이 돈이 그렇게 모은 돈이다. 그런 돈이 내일 얼마나 쪼그라~들지……,
저 원수 없으면 나도 저승 갈 텐데, 왜 저리 죽지도 않고 말썽만 피우는가. 아이고야, 내 팔자야. 어버버의 가슴은 천 갈래나 찢어진다. 한참을 몸부림친 모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2.
1935년 봄의 일이다. 평안북도 신미도는 오늘도 고요하다. 그날도 해동은 새벽에 바다로 나가 어제 놓은 그물을 잡았다. 그물을 잡아당기니 신비스러운 감흥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순간, 고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해동은 온몸이 굳어졌다. 무엇일까? 용왕님의 선물일까. 쌀가마니일까? 금덩어리일까?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해동은 아침 해가 떠오를 즈음에 동쪽을 보고 절하고, 음식을 먹기 전에 언제나 용왕님께 두 손 모아 인사를 드린다. 언젠가는 용왕님이 큰 선물을 주실 거라고 굳게 믿고 매일 매일 바다에 나오는 어부다.
해동의 긴장한 손이 서서히 그물을 당기니 뜻밖에도 검은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아, 사람이 아닌가. 이를 수가! 온 힘을 다하여 그물을 잡아 올리니 갓 피어난 젊은 여인이었다.
해동은 떨리는 손으로 여인을 반듯이 눕히고 그녀의 입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여 마시고는 여인의 배속으로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기를 반복했지만, 여인은 좀처럼 깨어날 줄 몰랐다.
‘아니다. 집으로 데려가서 미음을 먹이자’ 땀이 흥건한 해동은 여인을 거꾸로 업었다. 업고는 집을 향해 뛰었다. 저만치 언덕에 쓰러져 가는 그의 초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뛰는 해동의 등으로 따뜻한 체온이 다가옴과 동시에 꿈틀하는 몸통의 진동이 등줄기를 쳤다. 여인의 입에서는 알지 못할 신음이 쏟아져 내린다. 아다다는 죽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물속에서 용왕님을 알현하고 있었다. 아다다를 자세히 본 용왕님이 말씀하신다. -아직 때가 이른데 네 어찌 여기 왔느냐. 빨리 나가거라.- 그 말에 아다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다 아~다 아다다” 하면서 품었던 해수를 토해내었다. 토해낸 그녀는 크게 숨을 쉬었다. 아다다가 해동이 끓여준 미음을 먹고 몸을 일으킨 것은 그날 오후였다.
그 후 남자는 날마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여자는 잡아 온 고기를 손질해서 조림하여 먹었고 때로는 굽고 말렸다. 또 조그만 텃밭이 있어 가을이면 마늘을 봄이면 상추와 고추를 심었다.
생선을 썰어 된장에 상추와 고추 그리고 마늘을 찍어 한 입 넣으면 둘이 먹다가 누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들은 밤이면 한 이불속에서 속삭였다.
우리 이렇게 살다가 같은 날 한 시에 죽자고, 그렇게 세월이 반 십 년 흘렀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그들에게 기다리던 희소식이 찾아왔다. 5)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