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5

3.
한동안 영하의 날씨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제는 포근했다. 아침 정시에 집을 나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환승역에 내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거리를 나섰다.
인생 3기(나는 취업 전의 성장 시절과 학창기를 인생 1기, 취업기를 인생 2기, 은퇴 후 삶을 인생 3기로 구분한다), 내가 할 일은 중개사 개업이다.
1985년 시행된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이후 줄곧 생각한 사업이었으며 현직 시절에 관련 업무도 제법 살펴보았고, 더욱이 업소 작명까지 일찌감치 했는데, 적지(適地)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천지인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초등학교 시절 내 별호가 천지인,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만물의 구성요소로, 하늘 천(天), 땅 지(地), 사람인(人)에서 <천지인>이라 그대로 따왔고, 내 이름이 <천 지상>이니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내가 지어놓고 봐도 멋진 상호다.
무릇,……, 점포 자리는 호리병처럼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호구 자리가 제일이다. 그곳이 역세권이고 남향이라면 금상첨화다.
남향은 난방비가 절약되어 경제적이고, 실내도 밝아서 사람들의 마음도 맑아진다. 그러니 자연 거래 성공률이 높다. 그러하니 중개업 개업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점포 입지 선정은 사업 성공의 생명이다. 아무리 심사숙고해도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니다. 시기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확실한 입지에서 개업하자는 것이 내 소신이었다.
하지만 물 좋고 경치 좋은 정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적지를 찾아서 거리로 나선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중개업소를 통하여 열 몇 곳을 다녀봤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문제는 권리금이었다.
입지에 따라 A급은 억이요, B급은 8천, C급은 6천, D급은 4천이라는 권리금, 그것 없는 점포는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소에도 권리금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점포 임대차 계약서 어디에도 권리금이란 문구는 없다. 물론 기존의 시설을 그대로 인수하여 영업을 계속한다면 특약으로 약간의 보상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권리금은 그런 취지가 아니다. 완전히 도깨비방망이다. 턱없는 금액이 권리금이란 이름으로 연약한 자영업 후보자들을 울리고 있다.
무권리가 권리를 만드는 세상이 어디 있냐. 법적 근거가 없는 권리는 뿌리가 없는 잎과 열매와 같다. 언제 시들지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거래가 관행으로 정착된 데는 중개업자도 한몫했다고 본다.
건전한 부동산거래 질서를 위해서라도 권리금의 중개는 거부해야 한다. 내가 만약 개업한다면 권리금은 중개하지 않을 것이다. 권리금 관행을 깨기 위해서도 나는 중개업소를 끼지 않고 직접 건물주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무권리금의 보석을 찾아서 길을 나선 지 열흘째 되는 날이 어제였다. 어제, 드디어 내가 해낸 것이다. 권리금은 물론이고 중개수수료도 없다는 사실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누군가! 중개사 아닌가. 내가 중개산데 누구한테 중개수수료를 준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지. 으하하 5)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