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4

“사장님, 안녕하세요. 조금 전 그 계약, 죄송하지만 취소해야겠습니다.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하려 했는데, 개업할 수 없는 곳이라서 말이지요.”
“여보쇼! 누가 개업할 수 없다고 합디까?”
“여기 중개사들이 회원제를 만들어 자기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고 신규로 개업하는 업소는 배척하고 있군요. 좋은 위치라 계약했는데 여건이 안 되니 해약할 수밖에 없네요.”
“그래요? 그런데, 그 회원제라는 기 어느 법에 있는 겁니까?”
“어느 법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장벽이지요. 중개업은 물건 파는 가게가 아니라 매물이라는 정보를 매개로 하는 사업인데 정보가 차단되는데 어떻게 사업을 하겠습니까.”
“어허, 무슨 말씀인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왕따로 영업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사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재력도 있고 인품도 높으신 분 같으니 계약금 가지고 시비하지 말고, 점잖게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지요.”
“댁이 점잖게 말하니 나도 점잖게 말하겠는데요, 법적 하자가 아니니 내 책임은 아니지요,”
“책임 문제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내가 사업을 못 하게 되니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이지요.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아니고,……”
“허허, 선생, 초짜세요? 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자꾸 칭얼대는 겁니까. 법에 없는 걸 왜 내가 책임져야 하나요.”
“초짜? 여기서도 초짜라. 어허, 이 양반 말이 안 통하네. 내가 겁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임대인은 임대 물건에 대한 법적 하자(瑕疵)는 물론, 지역적 제약사항까지도 사전에 설명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말이지요. 잘못하면 사기가 될 수도.……”
“사기? 의무? 내 의무가 아니라 선생의 책임이지. 선생이 나와 계약할 때 중개업소 한다는 말을 언제 한 번이라고 했나요. 되지도 않는 말로 생트집 잡지 마시오. 계약을 이행하고 말고는 선생 책임하에 할 일, 나와는 무관하니 알아서 잘 처리하시오.”
-딸까닥!
-어라, 이 친구 막가네. 중개업소 할 거라는 말, 없지 않았냐고? 아이쿠야, 답답해라. 말은 안 했는지 몰라도 내가 부동산 한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 마누라도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 너만 몰랐냐?
-이 친구야. 이 친구, 나이도 나와 비슷해 보이고 말씨도 나와 비슷해 보여 내 맘같이 보았는데 영 아니네. 상종 못 할 놈이네.
갑자기 뒷목이 댕겨 눈을 감으니 마누라 얼굴이 확 떠올라 가슴이 더욱 답답해진다. 명예퇴직하고 3년씩이나 삼식이로 살아가는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마누라지만, 당신 체질에 사업은 무슨 사업이냐, 그것은 불가하오.
대신 어디 생활비라도 보탤 월급 자리나 알아보라면서, 사무소 구하러 다니는걸, 그렇게 못마땅해하던 마누라가 아닌가.
그런 마누라를 며칠을 두고 어르고 구워삶아 겨우 승낙을 얻어 계약금으로 거금 1천5백만 원을 걸었는데, 한 방에 날리게 생겼으니 어찌 마누라 얼굴을 제대로 보겠는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로다. 으흐흑 4)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