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변신> 1

웅석봉1 2024. 1. 10. 09:04

 

변신

 

(프롤로그)

 

북극에서 불어오기 때문인지, 경칩이 지났는데도 바람이 차고 거세다. 세찬 바람에 솔가지가 윙윙거린다. 윙윙 우는 솔가지 사이로 솔방울도 떨어지고 솔잎도 떨어진다.

 

솔잎이 떨어지니 송충이도 따라서 떨어진다. 하얀 놈도 떨어지고 푸른 놈도 떨어진다. 떨어진 놈들은 대부분 병신이 된다. 병신 아닌 놈도 병신처럼 살아가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아직은 식욕도 왕성하고 번데기가 될 정도로 늙지도 않았건만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한 놈들은 다시 솔가지에 오르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소나무 밑동에는 이미 애송이들로 만원이다.

 

날이 새고 해도 뜨지만, 강풍은 잦아들지 않는다. 갈 곳 없는 송충이 떼가 낙엽을 기어본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나뭇잎에는 온기가 없다. 차가운 바람에 더욱 이물질로 느껴질 뿐 배를 채울 아무 진액도 없다.

 

그리하여, 송충이 무리는 만만한 낙엽을 따라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나 보지만 길을 찾기란 간단치 않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다가 지친 놈들은 그곳에 누워 잠을 잔다. 긴 잠을 자는 놈들은 그곳이 곧 무덤이 될 것이다. 흑흑흑.

 

할 수 없이, 소나무 대신 그나마 진액이 좋다는 참나무를 찾아본다. 참나무는 그냥 땔감 나무가 아니다. 그 열매의 껍질을 벗겨 빻아 삶고 찌면 도토리묵이 된다. 묵은 지금도 건강식품으로 좋은 음식이지만, 예전에 흉년이 들면 인간들의 생명을 구하는 구황식품이었다.

 

참나무 중에 굴참나무는 껍질이 두꺼우면서 부드럽고 탄력적이다. 그래서 송충이가 기어오르거나 바람을 피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굴참나무는 살아서도 좋은 이웃이지만 죽어서도 참숯이 되고, 포고 균의 서식처가 되고, 굴피지붕이 된다.

 

그래서 송충이들도 소나무 다음으로 굴참나무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떨어진 송충이 무리 중에 핏기 있는 놈들은 굴참나무를 찾아 기어오른다.

 

그러나 실제 굴참나무 몸통에 안착하는 놈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은 잎도 피지 않았고, 더구나 <참충이>로의 변신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끊임없는 변신이 중요하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하동 쌍계사 산문 아래 숲속에는 아름드리 굴참나무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서 있다. 바람이 쌩쌩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내가 잎도 없는 그 굴참나무를 어렵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내가 변신 중이라는 예감은 확실하다.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의식이 그 증거다. 그 변신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1)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