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원의 서초동 나들이> 4
“어허, 야아야. 니 잡히 갈라고 큰소리치나. 좀 조용허니 이야기해라. 법이라는 기 언제나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 모르나. 모르긴 해도 그 사돈이 상습범이라 카지 아마.”
“상습범요, 아무리 상습범이라도 그러치. 시골 인심이 옛날 같지 않은 모양입니더. 아, 옛날이야 송아치 한 마리 정도는 이웃 간에 서로 나누어 묵었다 아입니꺼. 제가 열이 다 나네요.”
“그래 니말이 맞다. 옛날이 좋았지. 그건 그기고, 그래 내 없는 동안 니는 뭐 하고 지냈노? 취직자리 하나 알아봤나?”
“취직요? 쪼까 지둘리시요이. 곧 뭔 소식이 있어 부릴끼구만요. 그건 그기고, 아부지 나오시면 기분 좋게 할라고 지가 초가지붕을 새로 이엇다 아임니꺼.”
“허허, 야아가 내 없는 동안에 전라도 사투리도 배워버렸구만이라이. 배우라는 서울말은 안 배우고 돼지 발톱을 닳아가서는 에헴. 그래 요새 농사도 안 짓는데 짚이 어디서 낳노?”
“아임니더. 여의도 들판에 가이까네, 짚이 천지 비깔입디더. 그라고 유리창도 때가 마이 끼가 보기가 안조아 다 버리고 새것으로 깨끗시 바깠심더. 어머이도 새것으로 바꿀라다가 아부지한테 물어보고 할라꼬 그냥 두었심더. 아부지 생각은 어떻심니꺼?”
“어허, 아들아. 니 참 효자다. 근데 서울말 좀 쓰라. 천지비깔이 뭐꼬, 쌔빗다 지. 저 옆에 앉은 신사 듣는다. 에헴. 나는 뭐 괜찮하다만, 니 좋으면 나도 좋다. 근데 엄마를 바꾸다니, 니 나한테 아부가 지나~친거 아이가?”
“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부지. 아부가 아니고요. 옛날에 어떤 재벌이 한 말을 한 번 인용했습니다. 그 사람,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했지요. 저는 마누라가 없으니까 아버지 빼고 다 바꾸면 어떨까~하고요. 헤헤헤, 좋은 생각 아임니꺼?”
“허허 그래, 좋은 생각이긴 하다만 매사는 다 때가 있는 것이라, 내가 좀 젊었을 때 같으면 얼매나 좋았을까, 이제는 기운이 하루가 다르다 이~말이여. 그러니 그건 내 안 들은 걸로 하고 우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까?”
“헤헤 저도 아버지 편히 모시려고 농담 한번 했습니다. 계속하시지요.”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서초동이 참 요상스러운 곳이라, 거기서 사돈을 둘씩이나 만나 다니, 내가 출소하는 그날, 교도관과 같이 막 감방을 나서는데 너 둘째 누나 시아버지가 퍼런 옷을 입고 들어오더란 말이여. 그래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지. 이 누추한 곳에 선비 어른께서 어찌 오셨나이까. 그랬더니 그 어른도 얼굴이 벌겋게 되더니 눈을 껌뻑거리며 별일 아니오. 다음에 봅시다.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리더군.” 4)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