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예절교육(11)

웅석봉1 2023. 12. 3. 09:14

부녀회도 부녀회지만, 자치회도 부산을 떨었다. 간부들이 모여 관리소로 우르르 달려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실 자치회라고 해봐야 관리소장과 부녀회장이 협의하여 추천한 동별로 대표 한 사람씩 서른 명이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임원 몇 사람뿐이다. 그들은 관리소장에게 대책을 수립하라고 말만 할 뿐, 자치회 스스로 대책을 수립하지는 못했다. 시위가 저녁까지 이어지자, 그날 밤 관리소에서는 해명서 한 장을 시위대에 보냈다.

 

해명서의 주요 내용은 주민이 옥상에서 용변을 본 것이 원인으로 경비가 이를 목격하고 제지한 우발적 사건이며 피해자도 없는 성폭력이 말이 되느냐, 억지 주장 그만하고 자신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해명서를 본 시위대는 흥분하였다. 대자보를 보아서도 주민이 당한 것은 분명한데, 창피해서 나서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어쩌랴. 눈물을 머금고 시위를 일단 중단하고, 피해자부터 찾기로 의견을 모았다.

 

피켓을 접고, 그들은 단독주택단지의 숲속에 있는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밤이 늦도록 토의했지만, 피해자는 오리무중이었다. 누군가가 경비를 족치자고 하자, 다른 여자가 그가 순순히 말해줄까,……,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떳떳하지 못하니까 못 나타나지 않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올 게 뻔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때 502호가 외쳤다. CCTV! 아 그렇지.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1301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후훗.

 

대자보를 붙이는 그 순간의 CCTV를 확인하면 피해자를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 아닌가. 어떻게든 이놈의 경비를 못 쫓아내 안달인 1301호로서는 큰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보지? 관리소에서 보관하고 있을 텐데.……,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1301호와 502호는 관리소 CCTV 담당 기사와 마주 앉았다. 기사는 난색으로 대응했다. 테이프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수사상 필요하여 경찰의 요청이 있거나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규정만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자고로 기사(技士)는 여유가 없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 모양이다. 한 시간을 입씨름한 두 여자는 소득 없이 관리소를 나와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 숲속을 걸으면,……,묘책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였다.

 

묘책이라,……,대자보까지 붙여 놓고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 이 여자는 과연 누굴까? 왜 나서지 못할까! 경비의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 그렇다면 왜? 대자보를 붙였을까. 도대체 그곳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