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걷은 사람 하정우>(2~2)

웅석봉1 2023. 11. 8. 09:40

 

? 무슨 좋은 일 있어? 되게 밝아졌다!” “, 뭔가 달라졌어.” “*에너제틱 해졌는데?” 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진짜인가 싶어 거울 속의 나를 살펴보았다.

 

거기, 전과 비할 바 없이 건강해 보이는 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건강하고 밝은 기운은 국토대장정 이후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길 끝에서 허무함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것이라고, 걷기가 주는 선물은 길 끝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들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서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중략-

 

사람들은 인생살이에서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살아간다. 나중에는 형편이 나아지겠지. 세월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겠지,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면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겠지……,

 

어릴 때는 이런 희망과 꿈이 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지만, 나이 들수록 그 폭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고 뉘우치며 포기하는 단계까지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차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에는 죽음이라 이름붙여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많은 사람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농담처럼 시작된 국토대장정은 걷기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가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몸의 땀 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

 

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말 한마디로 시작된 천릿길 대장정 끝에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길 끝에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움켜쥐려고 걸은 게 아니니까.

 

지금도 나는 길 위의 소소한 재미와 추억들을 모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이 작지만 놀라운 비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정력적인, 강력한.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 21쪽에서 28.

 

<저자 하정우>

 

하정우(1978~본명 김성훈) 중앙대학교 졸업, 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2003년 영화 마들렌으로 데뷔. 2023년 청룡 시리즈 드라마 부문 남우 주연상 수상. 탤런트 김용건(1946~ 1967KBS, 공채 7)의 장남.

 

*티베트어로 인간걷는 존재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우리는 무엇을 이루겠다고, 또는 누구를 뛰어넘겠다고 걷는 것이 아니다. 걷는 것은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즐거운 인생을 살자는 것일 뿐이다.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위하여 오늘도 나는 걷을 것이다. 하정우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