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41)

웅석봉1 2023. 4. 22. 07:01

얼굴은 옛날 내가 어릴 적에 본 그 모습 그대로다. 높은 콧날에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시고 있다.

 

그런 엄마의 웃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깜짝 놀라 맨발로 뛰어갔다. 엄마를 얼싸안으려는 순간……, 잠을 깼다. 하도 허전하여 현관을 뛰어나왔다. 아파트단지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혹시 엄마가 이곳 어디에 계시지나 않을까! 나는 어린이 놀이터와 공원 그리고 관리소와 운동시설을 뛰면서 살폈다.

 

엄마는 없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와 아버님의 결혼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우연히 아버님의 가방으로 눈길이 갔다. 아버님과 엄마 그리고 할머님의 냄새가 난다. 가방을 다시 열었다. 간난 아기의 저고리 한 개. 아마도 형이 입었고……, 그것을 내가 이어서 입은 옷이 아닐까 생각된다. 배냇저고리로 추정한다.

 

배냇저고리가 왜 여기 들어 있는지 궁금하지만 넘어가고, 아버님의 영농일지와 어린이 공책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먼저 아버님의 영농 일지를 펼쳤다. 깨알 같은 글씨에 매일의 기록들이 아버님의 성격대로 세세하다. 대강을 보고 나서 공책을 집어 들었다. 정성을 들여 쓴 글씨가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뜻밖에도 그것은 형의 일기장이었다.

 

1.2.3학년 세 권. 매우 잘 쓴 글씨다. 당시 형이 주로 한 일과 마음이 담겨있다. 일학년. 이학년, 삼학년, 차례로 넘겨보았다. 3학년 일기의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 나는 엄마의 얼굴이 나의 눈 속으로 확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머리로 올라온다. ! 맙소사! 엄마는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셨어요!

 

형의 마지막 일기는 다음과 같다.

 

*197885. 날씨: 무덥다.

 

방학을 한 지도 열 밤이 지났나 보다. 할머님이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 중이다. 엄마는 오늘도 콩밭 매러 가셨나? 아직 밭에 계시나? 매일 저러시면 병나지 않을까? 그렇지. 우리 집에 일할 사람은 엄마뿐이지. 그렇지만, 엄마도 일찍 와서 저녁 하면, 안될까! 할머니와 교대로 하면. 오늘도 밖이 너무 덥다. 내일은 집에서 놀고 싶다. 그늘에서 동생과 책이나 읽을까? 아니지. 내가 놀면 우리 송아지가 배고플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