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37)

웅석봉1 2023. 4. 18. 09:06

그날, 나는 오늘은 도저히 그냥 못 보내겠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했다. 결혼 전에는 같이 잘 수가 없다고……, 그럼 '우리 오늘 결혼하는 게 어때'하고 내가 말했다. 소영이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어쨌든 그날 나는 나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그녀를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밑의 조그만 여관에서 촛불 하나와 맥주 세 병, 케이크 하나를 준비하여 우리만의 결혼식을 엄숙(?)하게 거행했다.

 

창문을 열었다. 한강의 출렁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 하나가 창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래 저 별이 주례요, 저 강물이 축하객이다……, 우리는 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축배를 들었다. 둘이서 촛불을 입으로 불었다. 그 순간 저 멀리 별똥별 하나가 주르륵 흐른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한번 터진 보는 쉼이 없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드디어 소영이와 나는 합방을 하였다. 합방하던 날 오전에 그녀를 데리고 엄마를 찾아갔다. 가면서 엄마에 대하여 처음으로 얘기했다. 소영이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반색하였다.

 

소영이는 엄마가 안 계시는 줄로만 알았다며 살아 계신다니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엄마와 소영이가 첫 대면을 하던 날, 내가 소영이의 집안 내력을 잠깐 얘기하자, 나와 소영이를 지긋이 쳐다보시더니 왜? 인연을 가지려 여기까지 왔느냐고 나를 나무라시는 눈치다.

 

소영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런 엄마의 태도가 나에게는 다소 의외였다.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인데 덕담 한마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내를 데리고 갔을 때는 엄마의 얼굴이 매우 밝았고 결혼을 축하한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영이와 아내를 왜 그렇게 구별했을까? 아마도 이루지 못할 인연이라는 걸 예감했을까……,

 

소영이와 나는 그런 엄마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그날 이후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강의실이건 도서관이건 식당이건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결국 탐욕이 되었다. 소영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시집보내기로 의견을 모았던 것 같다.

 

아마도 소영이 부모님 귀에 우리들의 행각이 들통났을 것이고, 그래서 서둘러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