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35)

웅석봉1 2023. 4. 15. 09:56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 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은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 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1,941. 9.*

 

그날 소영이는 나에게 많은 관심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관심이었는지 지금은 잊어 버렸다. 아무튼 그 이후 소영이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가끔은 편지도 주고받았으며 토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뒷동산 느티나무 아래서 시를 노래하며 장래도 속삭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엄마의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소영이도 묻지 않았다. 소영이와 만나고 난 이후부터는 엄마 생각이 반감되었다. 그토록 엄마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마음도 식어갔다. 엄마를 만나는 것보다는 소영이를 만나는 것이 더 기다려지고 즐거웠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마음에 없는 말도 하였다. 보고 싶지도 않으면서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랑의 위선인지도 모른다.

 

내가 J시에서 소영이와 헤어지던 날은 그 도시를 떠나던 전날 밤이었다. 그날은 느티나무가 아니라 시내 강변이었다. 우리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고 강변을 걸었다. 죽어도 변치 말자 언약하면서 강변 벤치에 앉아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입술을 더듬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고 돌려지고 또 돌려지고 포개지고를 반복하였다. 어설픈 사랑놀이라 하겠다만 처음의 경험이었다.

 

지금 그 강변에 서 있다. 건너편의 바위산이 옛날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바위산 아래로 강물이 맑게 흐른다. 거기에 그녀의 얼굴이 비친다. 나의 얼굴을 타고 소영이의 눈물이 흐른다. ,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발길을 돌려 강변을 걸었다.

 

10

 

엄마는 내가 고3이던 해의 초겨울에 서울로 거처를 옮기셨다. 당시 장기수들은 수년마다 교도소를 옮겨 다녔던 것 같다. 재소자들에게 삶의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함이리라 생각되었다. 나는 할머니와 의논하여 엄마가 있는 서울로 진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