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16)

“그렇지. 아무튼 선자는 너의 형이 죽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많이 달라졌어. 눈빛도 변했고 말도 없어지고 행동도 느려지고 흥분하기도 하고 잠도 많아졌지. 그래서 다 들 미친것이라고 했어. 나도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고, 그것이 재판에 참작되어 무기로 떨어졌다고 너의 이모가 말했어.”
고모님도 내가 알고 있는 정도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군에 있을 때 그때의 상황을 편지로 물었는데 답장이 없었고, 그 후 언젠가 또 내가 물었더니 엄마는 기억이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정말로 기억에 없는 걸까? 그때 엄마는 정신이상이 확실한 건가……,?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서 술잔을 들었다.
그날 밤 나는 고모님과 함께 엄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좀 더 새롭게 내 머리에 입력되었다. 한 많고 베일에 갇힌 여인이라는 기억들이다.
4
다음 날 나는 고모님과 작별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모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가는 길에 아버님 산소가 있다. 혹시나 해서 아버님 산소 입구에 차를 세웠다. 산길을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아니 어제는 없던 웬 사람의 발자국이 흰 눈 위에 도장처럼 찍혀있다.
아차! 한발 늦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덤으로 다가갔다. 하얀 국화꽃 한 다발과 붉은 장미 한 다발이 하얀 무덤 위에 다소곳이 놓여있다. 아직도 싱싱하다. 국화꽃은 알겠는데 장미는 또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는데……, 아무튼 또 놓쳤다. 그렇다면, 분명히 가까운 곳에 계신다.
부산으로 가는 것을 미루고 외할머님 산소로 다시 차를 몰았다. 그곳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허탕이다. 한숨을 돌리고 거리를 돌면서 엄마를 찾아 나섰다. 나는 장기전으로 돌입할 생각으로 슈퍼에 들러 평소 좋아하는 크림빵과 음료수를 비닐봉지에 가득 채우고 담배도 두 갑 샀다.
그리고 차로 고향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옛날 엄마가 살았다는 그 서점에도 들러 보았다. 초등학교 입구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서점이다. 지금도 누군가가 서점을 하고 있다. 서점에 들어섰다. 책 진열장에는 온통 초등학생들 참고서와 문구류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