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14)

웅석봉1 2023. 3. 22. 09:24

 

그즈음에 할머님이 꼴망태 두 개를 구해오셨다. 하나는 내 것. 하나는 형 것이다. 내 것은 아주 작았고, 형 것은 좀 컸다. 지금 생각하면 내 것은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형이 학교 갔다 오면 둘이서 꼴망태를 메고 쇠꼴을 뜯으러 가던 생각이 난다.

 

봄이면 우리는 낫을 가지고 풀을 베는 것이 아니라 호미를 가지고 갔다. 밭이나 논둑에 있는 풀포기를 호미로 뿌리까지 캐었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서 소 키우는 일은 할머니와 우리 형제의 몫이 되었다. 소는 두 마리였다. 큰 암소 한 마리에 송아지 한 마리다.

 

옛날에는 여름이면 소를 산에 풀어서 키우기도 했는데, 우리가 소 키울 때는 집에서만 키웠다. 사료를 사서 먹이는 집도 있었지만 우리는 볏짚이나 풀을 먹였다. 그래야 소가 병도 없이 튼튼하게 잘 자란다고 믿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형과 나는 쇠꼴 벼는 일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형과 내가 망태에 풀을 가득 채워오면 엄마보다는 할머님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할머님은 소를 우리 집의 가장 큰 재산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그러시던 할머님도 세월이 흘러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님의 장례 기간에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임시석방 신청을 거절하셨다. 번잡스럽다는 이유였으나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참 특이하다. 수감 중에도 우리 가족 외는 면회를 싫어하셨다. 아마 대인기피증인가 보다.

 

그런 엄마도 가족 중에 형을 유독 그리워하였다. 왜 그렇게 잊지 못해 하는지 대하여는 알 것 같았다. 아비 없는 자식이 아닌 당당한 청년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셨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하시겠는가!

 

내가 일곱 살 때, 그해는 무덥고 긴 여름이었다. 그해 형은 저수지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하였다. 그날 나는 할머님과 함께 쇠꼴을 베기 위하여 동네 옆 개울가에 있었다. 형은 형 또래의 아이들과 풀을 베러 산으로 갔다.

 

할머님과 내가 점심을 먹으려 집으로 오는데 엄마가 동네 어른들과 대나무 막대기 몇 개를 들고 산 쪽의 저수지로 오르고 있었다. 엄마는 울부짖었다. 형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와 할머님이 뒤따라갔으나 엄마를 놓치고 말았다. 그날 엄마는 뛰는 것이 아니라 날아갔다. 저 위에서 엄마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날의 일은 그 이상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