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12)

웅석봉1 2023. 3. 20. 09:21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날씨도 몹시 추웠지. 바람도 많이 불고……, 흰 눈이 꽃처럼 펑펑 내리퍼부었어. 사람들이 모두 큰 인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지. 그날 선자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얼마나 슬퍼하던지 보는 사람들이 울지 않는 이가 없었지. 아휴 세상에! 그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슬퍼했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려 말이 안 나오네

 

고모님은 다시 한숨을 쉬고 막걸리 한 모금을 마신다. 이어서 말을 잇는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지. 너의 아버지가 안 계시니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지. 많은 땅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선자가 고생을 참 많이 했어. 중늙은이 시어머니 모시고 어린 두 아들 키운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생각해봐. 그때 너의 어머니 나이가 서른 살이야. 내가 그 나이었으니까

 

그렇군요

 

그 곱든 손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피부는 깜둥이가 되었지. 농사지으면서, 큰일이야 일꾼을 사서 하였지만 잔 일은 모두 너의 어머니 몫이었어. 일철이면 남자들처럼 지게 지고 논밭으로 나가곤 했지. 여자가 지게를 진다는 것은 큰 고통이야. 집안에 일할 남자가 없다는 증거지. 지게는 남자의 상징이니까. 여자로서는 큰 수치였어. 우리 동네에서 여자가 지게 지는 사람은 아마 선자뿐이었어

 

……, 그렇군요

 

그러니 선자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목숨 걸고 농사를 지었어. 그 와중에도 아마 소도 몇 마리 키웠었지. 선자는 아주 힘들면 가끔 나에게 왔어.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집에서 식당을 했거든. 내가 선자한테 그랬어. '선자야 고생 그만하고 모두 팔아서 이곳으로 이사해라. 여기서 나와 장사나 하자.'”

 

그랬더니요?”

 

그랬더니 선자는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꺼내지도 말라는 거야. 내가 따져 물었지. 이유가 뭐냐고. 부모님이 일구어낸 농토를 버릴 수 없는 것이 첫째 이유요, 그다음이 모두 들, 땅 버리고 도시로 나가면 농사는 누가 짓느냐는 것이 두 번째 이유고. 그리고 농사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였어, 자기는 농사지어서 두 아들 잘 키울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